
삶도 일도 환경설정 셋팅 중
나는 자타공인 맥순이다.
지금은 윈도우 PC에서도 어도비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디자이너의 작업 환경은 곧 ‘맥’이었다.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 꼬맹이 디자이너였던 나는 맥킨토시 7600을 시작으로 8600, G3, G4를 거쳐 iMac, MacBook Air, 그리고 MacBook Pro까지 줄곧 맥만 만지며 일해왔다.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요즘은 온종일 마우스를 쥐고 작업하는 시간이 줄었다. 강의와 그림 그리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창 일에 치였던 시절에는 동시에 5개 프로젝트가 마감을 향해 달려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애플 로고가 떠오르며 재시동되는 맥북 화면을 자주 봤다. A/S센터에 문의하면, 작업 속도가 프로그램이 따라가지 못해 그렇다는 말과 함께 “좀 쉬엄쉬엄 일하세요”라는 조언을 받기도 했다. 나로선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내 삶의 환경도 일하는 방식도 많이 변하고 있다. 디자이너로 시작한 일이 자연스레 일러스트레이터로 확장되었고, 회화까지 넘나들며 어느새 학생들에게 그림과 디자인을 가르친 지 11년 차가 되었다. 학교에서는 PC를 주로 사용하지만, 여전히 손에 익은 작업은 맥이 편하다. 얼마 전부터는 이동 중에도 작업할 수 있도록 노트북을 메인 작업기로 바꿨다. 물론 맥북프로라 해도 나의 작업량이 가벼울 리 없어, 요즘도 종종 사과 로고를 다시 보게 된다. 크흡…
업무상 원드라이브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고용량 이미지 파일을 다루기엔 불편함이 많았다. 그래서 최근부터는 클라우드 연동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맥북프로, 아이패드, 아이폰, 맥북에어, 아이맥까지 총 다섯 대의 기기가 서로 연동되어 작업 효율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속도와 편리성은 가히 감동적이다. 물론 초기에 기본 데스크탑 설정을 잘못해 데스크탑 작업물이 몽땅 날아가는 참사를 겪기도 했지만,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 내 작업 환경은 점점 더 안정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포토샵만 실행하면 유독 잦은 재시동이 발생한다. 어디서 충돌이 있는 건지… 어도비 외에도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계속 출시되고 있어서, 최근에는 프로크리에이트 앱을 쓰기 시작했다. 다행히 포토샵, 일러스트, 인디자인 등에서 다져온 기본기 덕분에 새로운 툴에 대한 적응은 빠르다. 몸에 배인 스킬이 결국은 다른 툴 위에 어깨를 빌려주는 셈이다.
이렇게 나는 더 이상 한 자리에 앉아 하나의 일만 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고, 수업을 하고,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느새 N잡러의 삶을 살고 있다.
올해의 남은 시간은 무척 바쁠 것 같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마음만 앞서지 않도록 스스로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며 정돈하고 있다. 아마 올 하반기는 내년을 준비하는 정력적인 시간이 될 것이다.
일과 삶, 그리고 새로운 만남과 도전이 나란히 잘 연동되기를 바라며, 삶도 일도 환경설정 셋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