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선생 되다
알람없이 눈을 떠 커피를 내려 마시고, 라디오를 켜 음악을 들으며 아침을 챙겨 먹는다. 미술선생 의 평범한 하루가 시작이다.
‘띡띡띡띠~’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연다.
컴컴한 공간에서 익숙하게 스위치의 위치를 찾아 불을 켠다.
파티션 뒤 재료가 쌓여 있는 박스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서 운동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슬렁슬렁 걸어와 어제 의자에 걸쳐 두고 간 앞치마를 들어 목을 넣어 끈을 묶는다.
노트북을 켜고 연주곡을 튼다.
시간을 확인하고 종이와 재료를 꺼내 놓는다.
곧 아이들이 문을 열며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들어올 거다.
오늘의 미술 수업이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분당에서 작은 미술 학원을 운영하는 미술선생이 되었다.
오랜만에 연락되는 지인에게 “저, 미술 학원 해요.” 하면 “오~ 원장이 되었네!” 하며 놀라워한다. 처음부터 미술선생이 꿈이었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나는 미술이라는 큰 우산 안에서 이쪽저쪽 기웃거리며 일을 했는데, 커다랗게는 시각 예술이라는 영역 안이지만 직업적으로는 이런저런 이름으로 구별되었다.
디자인 회사에서 무적의 야근 부대이기도 했고, 꼼지락거리며 만드는 것을 좋아해 온갖 공예들을 배우고 핸드메이드 비누와 양초 공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잡지와 전집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판권에 내 이름 석 자가 인쇄되어 있는 것에 한없이 뿌듯해하는 책만드는 디자이너였다가, 마우스 대신 타블렛 펜을 잡고 살겠다고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완벽한 집순이로 지낸 적도 있고, 뒤늦게 그림책과 회화를 공부하고 일러스트과와 시각디자인과 수업을 하는 교수이기도 했다.
시계추처럼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며 일하는 나를 친구와 선배들은 참 재주도 많다며 신기해했다. 불리는 이름은 달랐지만, 나는 그리거나 만들거나 하는 사람이었으니 내가 배우고 익힌, 좋아하는 것을 하며 남은 인생을 천천히 산책하듯 살겠노라 생각하며 미술 학원을 시작했다.






미술학원 뭐가 필요한데?
미술 학원은 교육사업에 속하므로 교육청 허가를 받아야 학원을 운영할 수 있다. 교육청에서는 학원 규모의 크기, 즉 일정 평수를 기준으로 학원과 교습소로 명칭이 나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는데, 1평을 기준으로 수업할 수 있는 학생 수가 정해지므로 수업의 최대 인원도 신고하는 평수에 따라 다르다.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서류들도 필요하고, 수업명과 몇 분 수업할 건지, 분당 시간을 제출해서 수강료도 책정하고, 허가증이 나오면 사업자 등록도 내야 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학원을 하겠다고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있었으니, 내가 운영하는 학원의 고유성을 찾는 거였다. 학원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세상에 이렇게 많은 게 미술 학원이었다. 아파트 단지 상가에는 하나씩 미술 학원이나 교습소가 있었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도 미술 학원이 보였다.
‘저 학원은 어떤 수업들을 하나’ 궁금해하다가 ‘내 학원에서만 할 수 있는 수업은 무엇이 있을까’로 이어진 고민은 ‘내가 잘하는 것이 어떤 것이 있나’로 이어졌다.
돌고 돌아, 미술선생
디지털 일러스트부터 꼼지락거리며 만드는 공예, 온갖 재료를 섭렵한 드로잉들, 그림책을 그리고 만들었던 디자인까지 모든 경험들의 총량을 펼칠 수 있었다.
이런 신세계가 있나!
이렇게 돌고 돌아 미술선생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디자인과 강의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