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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묘 그리기’는 사랑이지요

반려동물 그리기

월요일 저녁, 수이님과 수업

매주 월요일 저녁, 그림산책의 문을 활짝 열며
“쌔엠~, 안녕하세요!!” 하고 밝게 인사하며 들어오시는 수이님.
상냥한 목소리, 상큼한 단발머리, 오밀조밀 여성스러운 패션. 손에는 종종 뻥튀기나 만두 같은 간식을 들고, “쌤 생각나서 사왔어요”라며 건네주시곤 한다.
일주일에 한번이지만 벌써 1년 반 넘게, 퇴근 후 꾸준히 찾아오시는 수이님은 월요일 저녁의 고마운 메이트다.

본다는 것과 그린다는 것

그림을 그리다 보면,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와 얼마나 다른지 놀라곤 한다.
예를 들어 고양이 콧등의 짧은 털이 볼로 향할 때의 털의 방향, 콧구멍의 미세한 형태 같은 것들. 분명 봤지만, 막상 그리려 하면 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는 흔히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알고있는 지식을 끌어와 대상을 짐작하고 그 짐작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봤지만 제대로 보지 않고 그리는 부분들 – 내가 짚어드리는 부분은 바로 이런 포인트다.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그래서 그렇게 보이도록 그리려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설명해드리면서 질문한다.
“진짜로 본 적 있으세요?”

그러면 수이님은
“우와~ 쌤은 정말 관찰력이 뛰어난것 같아요. 어떻게 이게 보여요?
쌤의 설명을 들으니 진짜 보여요.!”
하며 신기해하시고 집에가서 다시 보니, 보이더란 얘길 해주시곤 하셨다. 그렇게 천천히 제대로 보는 것을 배우는게 신기하고 더 잘 보고 싶다고 하신다.
보는 법을 배우는 건, 단순한 그림 그리기를 넘어서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많이 배운다.

반려동물 그리기 아크릴
반려동물 그리기

하루를 그리는 힐링의 순간들

수이님의 반려묘 하루는 노르웨이숲의 턱시도 고양이다. 검은색의 긴 장모의 털의 하루를 꽃이 가득한 정원에 있는 모습으로 그려나가며

“우리 하루는 꽃밭에 있네~ 쌤, 월요일 이 시간이 제겐 힐링이에요”
하시며 주차마다 열심히 그리셨다. 처음 다뤄보는 아크릴 재료가 수이님과 잘 맞아 다행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게 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그림의 끝이 보일수록 기쁨도 커간다. 얼른 완성해서 하루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손과 눈, 마음이 함께 작동하는 신비로운 협업이다.
원하는 색을 만들기 위해 물감을 섞고 붓으로 종이위에 색을 칠하는 동작은 그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데,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마음껏 보고 그리고 손끝에서 표현한다는건 단순한 취미를 넘어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천천히 바라보며 깊이 느끼게 되는 행복한 시간이다.

반려동물 그리기 과정

반려동물 그리기는 사랑이지요 🙂

완성된 그림을 하루에게 보여주었더니, 하루가
“이게 나라고?”
하는 표정으로 보는게 너무 웃겨서 사진을 찍으 셨다고 보여주셨다.
하루와 하루를 그린 그림을 같이 찍은 사진을 보고 수이님과 같이 호탕하게 웃었다! ㅎㅎㅎㅎㅎ

첫 그림을 마무리한 수이님은, 곧 두 번째 하루의 초상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하루의 눈빛, 털결 하나하나까지 더 천천히, 더 깊이 그려내고 싶다고 하신다.
그림을 통해 쌓여가는 관찰과 감정의 기록은 그렇게 한 장, 또 한 장 쌓여갈 거다.


반려묘를 그린다는 것은 반려묘를 향한 집사의 사랑 고백 아닐까.
나도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그릴 때 가장 진심이 된다.
그래서인가 – 학원에 고양이 그림이 많다. ㅎㅎㅎ

사랑하는 대상을 그린다는 것,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사랑하는 대상을 천천히 바라보고 그리는 시간, 그 자체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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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uh profile

디자인, 일러스트, 그림책 등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강의해왔습니다.
현재는 분당에서 ‘그림산책’이라는 미술 교습소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고 책을 만드는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읽고, 쓰고, 그리는 일상을 차곡차곡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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