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면 무엇이 가장 먼저 훈련되어야 하는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강의실에는 고요한 정적만 흐른다.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쉬운 5지선다의 예시를 준비한다.
“1번 머리, 2번 엉덩이, 3번 눈, 4번 손, 5번 센스.”
이래도 먼저 입을 여는 학생이 없는 경우가 일상다반사라 이내 미리 준비한 상품을 슬쩍 꺼내 보여준다. 과자이거나 내가 직접 디자인한 제품이다.
그제서야 상품에 눈이 먼 학생들이 마구잡이로 정답을 외치기 시작한다. 번호와 함께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덧붙여 물어보는데, 희한하게도 매번 준비한 정답만 쏙 비껴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물론 그림이나 디자인을 잘하기 위해서는 1번부터 5번까지 모두 필요하다. 이해하고 알아야 하는 지식도 필요하고, 오래 앉아 있을 체력도 필요하다. 반복된 훈련은 감각을 키우고, 감각은 다시 표현을 바꾼다.
하지만 가장 먼저 훈련되어야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눈’이다.
사람들은 흔히 그림은 손재주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손이 섬세하면 그림도 잘 그릴 것이라고 말한다. 혹은 감각이 없어서 그리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은 손보다 먼저 눈으로 시작된다. 눈이 먼저 보고, 손은 한참 뒤에서 느리게 따라온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한다.
“그림은 손보다 먼저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눈으로 보지 못했는데 손이 어떻게 그리겠는가?”
손은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이미 눈이 결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본다’와 ‘안다’ 사이
우리는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들기 전까지 하루 종일 무언가를 본다. 눈으로 들어온 정보는 순식간에 뇌에 전달된다. 하지만 봤다고 해서 모두 아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다. ‘본다’와 ‘안다’ 사이. 우리는 무언가를 보는 순간 동시에 해석한다. 생각보다 우리는 제대로 보지 않았는데도, 이미 봤다고 생각한다.
수업 때 게슈탈트 시지각 이론을 꼭 발표하게 한다. 학생들은 이론을 조사하고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직접 사진을 찍어 오고, 왜 그렇게 인식했는지까지 함께 이야기한다.
게슈탈트 시지각 이론은 우리가 시각 정보를 어떻게 조직하고 인지하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우리의 눈은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뇌는 그것을 하나하나 따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정보를 빠르게 조직하고, 가장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의미를 만든다.
우리의 눈은 생각보다 쉽게 속는다. 그림은 그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분야다. 명암만으로 입체를 만들고, 평면 위에 깊이를 만들며, 끊어진 형태도 하나의 모습으로 인식한다. 그림은 ‘본다’는 행위가 얼마나 쉽게 속을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보고’ – ‘그린다’ 사이를 생각한다.
나는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저건 무엇일까? 왜 저렇게 보이는 걸까? 그러면 어떻게 그려야 하는 걸까?
그림에 관한 책이든, 글쓰기에 관한 책이든 창작을 이야기하는 책에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낯설게 보기’ 즉, 보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부터 출발한다.
우리의 눈은 생각보다 쉽게 속는다. 그래서 그림은 잘 그리는 기술보다 제대로 보는 연습에서 먼저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