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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그림책, 한권의 더미북이 나오기까지_1. 기획

더미북 완성하기

성인 그림책, 한 권의 더미북이 나오기까지

올해 성인 그림책 수업에는 다양한 연령대가 모였다.
20대 중반쯤 되었을까 싶은 딱 봐도 앳된 얼굴의 가은님부터 초·중·고 학생의 어머님들, 그리고 느긋하게 노년을 즐기고 계신 어르신까지.

많은 분들이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하신다.
“그림책은 아이들이 보는 몇 장 안 되는 얇은 책이니까 금방 만들 수 있겠지.”
하지만 막상 시작하면 그림책의 깊이에 놀라곤 한다. 그림책은 글이라는 문학과 그림이라는 시각 예술이 결합된 장르다. 글 하나만으로도 배워야 할 게 수두룩하게 많은데, 거기에 그림까지 더해지니 이 예술 세계는 가히 넓고 깊다. 그래서 그림책은 가장 어린 아이부터 성인까지 두루 읽을 수 있고, 책장에 가장 오래 꽂혀 있는 책이다.

기획하기, 그림책의 첫 단추

그림책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한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이나 디자인과 학생들 처럼 이미지부터 이야기의 발상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글부터 쓴다. 먼저 어떤 이야기를 쓸지, 즉 기획이 필요하다.
기획이 나오지 않으면 그림 한 장, 썸네일 하나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그림책은 결국 은유다.
내가 경험한 것, 내가 아는 것들을 글로 적고 그것을 동물이나 사물로 의인화하면 독자가 훨씬 쉽게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수업에서는 먼저 자기를 들여다보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내가 요즘 가장 마음에 두고 있는 걸 적어보고 자신의 생활을 관찰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바로 거기에 이야기가 싹트는 씨앗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성인 그림책 수업 더미북 만들기

시간을 찾는 곰의 이야기

가은님은 첫날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작년부터 도서관에서 공부했는데, 뭔가 한 것 없이 시간이 흘러간 것 같아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책을 만들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바로 이 감정이 소재가 되었다.
어느 늦가을, 곰은 깜짝 놀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고?” 그래서 사라진 시간을 찾으러 숲속 동물들에게 묻고 다닌다.
느리게 경주하는 거북이, 쳇바퀴 도는 햄스터, 파티를 즐기며 현재만 사는 사자, 현명한 부엉이에게 물어보지만 원하는 답은 찾지 못한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온 곰은 문을 열면서 가득 쌓여 있는 창고를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 이게 바로 내가 보낸 시간들이구나.” 하고 웃으며 겨울잠을 잔다는 이야기.

작은 이야기지만 공감할 수 있기에 힘이 있다. 누구나 “시간을 도둑맞은 것 같은 마음”을 경험하니까. 그리고 결국 그 시간은 내가 보낸 시간이라는 깨달음.

성인 그림책 수업 더미북 만들기
성인 그림책 수업 더미북 만들기2

그림책, 더미북 시작

씨앗을 발견하고 그림책으로 발화되도록 이끌어주는게 나의 몫이다.

추가하거나 생략, 강조할 피드백을 거쳐 글과 구도를 다듬어 썸네일을 완성하고 나서야 그림이 시작된다.

가은님은 디지털 드로잉으로 그림을 그렸다. 주인공 곰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가은님과 닮아서 그리는 가은님을 뒤에서 보며 빙그레 웃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소소해서 누구나 비슷해서 이것도 이야기가 될 수 있냐고 물어보시지만 이렇게 멋진 한 권의 더미북이 완성됐다.

성인 그림책 수업 더미북 만들기 작가의 글

나의 이야기에서 출발하기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다.
멋진 책을 만들겠다며 이솝 우화를 이리저리 가져와 섞다가 글도 정리되지 않고, 그림 한 장 시작하지 못하고 끝내 손을 못 댄 분들.

그래서 늘 강조한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는 것.
내가 아는 것, 내가 경험한 것, 내가 고민하는 것. 그 속에서 나온 이야기가 가장 솔직하고, 그래서 가장 공감을 얻는다.

우리의 삶은 모두 다르지만, 닮은 지점이 있기 때문에 그림책 속 이야기는 함께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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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uh profile

디자인, 일러스트, 그림책 등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강의해왔습니다.
현재는 분당에서 ‘그림산책’이라는 미술 교습소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고 책을 만드는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읽고, 쓰고, 그리는 일상을 차곡차곡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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