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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권의 더미북이 나오기까지_5. 그림은 어떻게 스타일을 갖게 되는가

그림책 더미북 그림스타일

마감이 있는 그림과, 시간이 있는 그림

성인 그림책 수업을 외부에서 진행할 때는 늘 마감이 먼저 주어진다.
정해진 기간 안에 글을 쓰고, 페이지를 구성하고, 그림까지 완성해야 한다. 보통 10주 만에 인쇄소로 파일을 넘겨야 하는 일정이기 때문에, 그림의 스타일을 충분히 탐색할 시간이 많지 않다. 결국 지금 가능한 상태 안에서, 단점을 보완하며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반대로 학원에서 진행하는 성인 그림책 수업이나 일러스트 수업은 시간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롭다. 그래서 한 사람의 그림을 더 오래 들여다보고, 더 천천히 다듬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다.

무엇을 그릴까보다,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그림책은 글이 이끌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림이 이야기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어떻게 그릴 수 있는가’에 가깝다. 자신에게 맞는 재료와 표현 방식을 찾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수업의 중심이 된다.

그림책 더미북 재료선택

먼저 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들

그림을 빠르게 잘 그리고 싶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많이 보는 것이다.

잘 그린 그림을 보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것.
어떤 그림에서 시선이 멈추는지, 어떤 색과 질감에 끌리는지 관찰하는 것. 이 과정이 시작이다.

그래서 수업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이미지를 보고 스크랩해 오도록 한다. 그리고 그 스크랩을 함께 분류한다. 어떤 그림을 가져왔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이 드러난다.

그림책 더미북 그림스타일

재료를 고르는 일은, 표현을 선택하는 일

그 다음 단계에서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재료를 찾아간다.

그림의 재료는 크게 건식과 습식으로 나눌 수 있다.
건식 재료에는 연필, 색연필, 펜, 파스텔, 오일파스텔, 목탄 등이 있고,
습식 재료에는 수채화, 과슈, 아크릴, 유화 등이 있다.

종이는 물을 만나면 흡수하고 번지기 때문에,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지에 따라 종이의 선택도 달라진다. 결국 재료를 선택한다는 것은, 표현 방식을 선택하는 일과 같다.

그래서 스크랩한 그림들을 재료의 특성에 따라 나누어 보고, 때로는 다시 재료를 섞어 그려보기도 한다. 수작업 이후 디지털 보정을 더하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림책 더미북 그림스타일

한 장씩 쌓이며 드러나는 취향

여러 방식으로 반복해 그리다 보면, 눈으로 좋다고 느끼던 스타일과 실제로 손에 맞는 재료 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좁혀진다.

이렇게 한 장씩 그림이 쌓이면, 어느 순간 보이기 시작한다.
이 사람은 어떤 장면을 좋아하는지, 어떤 표현을 잘 하는지.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은 결국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과 닮아 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일은 묘한 일이다.
기록만을 생각한다면 사진이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

그럼에도 시간을 들여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리는 동안 변해가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에 가깝다.

뜻대로 그려지지 않는 수많은 실패를 지나, 다시 한 장을 완성하는 순간.
그 시간들 사이에서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아주 조금 달라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또 한 장의 그림을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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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uh profile

디자인, 일러스트, 그림책 등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강의해왔습니다.
현재는 분당에서 ‘그림산책’이라는 미술 교습소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고 책을 만드는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읽고, 쓰고, 그리는 일상을 차곡차곡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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