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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를 올리고

가드를 올리고

가드를 올리고

글은 산을 오른다는데 그림은 치고박는 링 위에서의 권투 시합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바위같은 어퍼컷에 고개가 들린다.
강력한 펀치다.
가드는 내려가 있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어퍼는 정확한 타격점인 턱을 향해 인정사정 없이 날렸다.

가드를 올리고

내가 날리는 펀치는 상대방은 다 보인다는 듯 요리조리 살살 피하고,
저 놈은 내 빈틈을 정확하게 꿰뚫고 펀치가 날라온다.

대단한 놈이다.

어느새 나는 주인공에 감정이입되어 치고 맞는게 내가 되어 있다.

링 위에서 쓰러져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려 애써본다.
헐떡거리는 숨 소리가 들릴것 같다.
이쯤되면 그만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니다. 아직은 네 실력을 다 보여주지 않았어.
3분의 링위에 올라기기 위해 수 많은 시간을 땀 흘렸겠지.
그러니 조금만 더 해보라고, 힘내라고 응원하게 된다.

가드를 올리고

그렇지. 그렇지.
네 실력을 다 보여주고 와.
힘 내~

일어났네. 다시 자세를 잡는다.

가드를 올리고 1

무자비한 놈.

빈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해 온다.

나는 내리 맞는 연타에 또 다시 무너진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가드를 올리고 1
가드를 올리고 2
가드를 올리고 3
가드를 올리고 4

일어나! 일어나라고~!!!

젠장.

가드를 올리고 5

얼굴이 엉망진창이다.

땀투성이에 여기저기 멍 자국까지…
신나게 쥐어 터져서 정신까지 나간게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렇게 얻어터졌는데도 다시 일어나 웃을 수 있는 건가!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비록 이번 링에선 졌을지라도, 승자다.
베시시 웃는 웃음에 나도 따라 피식 거린다.
가슴이 저리면서도 벅차다.

산다는게 이런거 아니겠는가.

가드를 올리고 6

불현듯 떠올랐다. 이 책 말이다.
킥복싱을 하고 오가며 걷다가 ‘아! 복싱을 하는 그림책이 있었어!’ 책장을 한참 뒤져서 찾았다.
복싱이라는 소재만 기억하고 있었을 뿐, 다시 읽는 책은 새로운 책이었다.
짧은 글 한 줄과 단순한 라인 드로잉 그림 뒤로 새롭게 읽히는 은유.

얼마전 ‘무쇠소녀단 2’의 마지막 편을 보다가 울어버렸다. 킥복싱 몇개월차인 내가 봐도 엉성한 냥냥펀치의 그녀들이 4개월만에 링에 올라서는 순간에는 내 심장도 벌렁거렸다. 어느새 주먹을 꽉 쥐고 응원하고 있더라.
다시 또 일어서는 마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해낸 순간, 그녀들의 눈물에 나도 같이 울고 있었다.

찰스 부코스키의 쿨한 표현을 빌리자면,
고맙다, 버텨줘서.
당신도 나도 그대도


가드를 올리고

고정순 그림책
펴낸곳 만만한책방
초판 1쇄 2017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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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uh profile

디자인, 일러스트, 그림책 등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강의해왔습니다.
현재는 분당에서 ‘그림산책’이라는 미술 교습소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고 책을 만드는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읽고, 쓰고, 그리는 일상을 차곡차곡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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