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심했던 겨울,
나를 멈춰 세운 아크릴화 한 점
작년 겨울에 비하면 이번 겨울은 눈이 참 박하다. 유난히 추위를 못 견디는 나는 지난 겨울 내내 ‘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번 겨울은 참 무심하게 흐른다. 아니다. 정정하자. 계절이 바뀌어가는 줄도 모를 만큼 내 마음이 무심했다. 무엇이 그리 바쁘다고 이토록 마음을 동동거리며 겨울을 보냈을꼬.
문득, 휴대폰이 ‘오늘의 추억’이라며 작년 이맘때 그린 아크릴화 사진 한 장을 띄워줬다. 흰 눈이 사락사락 내리는 풍경, 아무도 밟지 않은 소복한 눈 위로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고양이 한 마리.
고양이가 가르쳐준 ‘따뜻한 거리감’
눈이 펑펑 오던 날에 본 한 장의 사진이 맘에 들어 보고 그린 그림이다.
차가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손바닥에 닿으면 금방 녹아 사라질 눈송이처럼 묘하게 포근한 느낌이 좋아 그렸던 기억이 난다.
그림을 그릴 때 알았다.
이 작은 고양이는 눈송이가 쌓이는 소리를 들으며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는 것을. 녀석이 웅크리고 앉아 있던 바닥에만 눈이 쌓이지 않은 걸 보니, 쏟아지는 눈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사람들은 흔히 고양이가 도도하고 독립적이며 애교가 없다고들 한다. (쓰다 보니 왠지 뜨끔하다. 이 공간의 주인이자 두 냥이의 집사인 내 이야기 같다.)
하지만 고양이는 분명 따뜻하다. 격한 반가움보다는 적당하고 따뜻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알 뿐.
새벽에 깨어 부엌으로 나갈 때면 어김없이 발치에 와 앉아 골골송을 불러주는 큰 녀석, 일복 많은 집사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가 장난감을 물어와 끝내 웃게 만드는 작은 녀석.
나는 이 녀석들과 지내는 일상에서 뭉근하고 지극한 애정을 느낀다.


‘봄날의 곰’보다, ‘봄날의 고양이’
나 역시 표현에 서툴고 곧잘 구석으로 웅크리곤 하지만, 가끔은 마음이 ‘봄날의 고양이’ 같을 때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좋아하는 마음을 ‘봄날의 곰’이라 표현했지만(《상실의 시대》가 원제로 바뀌어 나왔다는걸 최근에 알았다) 나는 포실포실한 아기 곰을 안고 뒹구는 것보다, 봄 햇살을 만끽하는 ‘봄날의 고양이’같이 마음이 데워지는 순간들이 있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집사 옆에 식빵을 굽고 앉아 몸을 노릇노릇하게 데우는 기분. 냐옹- 소리로 가벼운 눈인사를 건네고, 앞발을 쭉 뻗어 시원하게 스트레칭을 한 뒤 다시 몸을 둥글게 말아 ‘햇살 샤워’를 만끽하는 그런 고양이가 된 것 같은 마음말이다.
그럴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골골송이 흐른다.
티 나지 않게,
아주 조용히.

분주함의 한복판에서 ‘여유’를 묻다
요즘은 일이 참 많다.
촘촘한 시간의 밀도 속에 갇혀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문득 마음의 여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도 고양이처럼 세상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보폭을 가지고 싶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작은 햇살 한 조각에 마음의 빗장을 스르르 풀 줄 아는, 그런 여유의 시간을 말이다.
다가올 봄날에는, 집사 옆에서 식빵 자세로 졸고 있는 우리 집 녀석들처럼 세상에서 가장 무해하고 게으른 여유를 꼭 만끽해 보리라 다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