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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속에 담긴 내 얼굴

별명 속에 담긴 내 얼굴

내 안에 수 많은 나

한 사람안에는 얼마나 많은 모습이 있는 걸까.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나는 종종 이런 것들이 궁금하다. 그래서 내 안의 감정들이나 생각나지 않는 유년시절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나 무언가를 즉흥적으로 결정해버리는 듯한 우연성들에 대해 꼬리를 물며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보면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뒤늦게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고, 여전히 모르겠는 채로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나를 부르는 ‘별명’은 타인의 시선에서의 나를 생각해보게 되니…
요즘 통화때마다 내 오래된 별명을 부르는 B덕에 한쪽 눈을 지그시 감으며 궁시렁 거려본다.

암사자 나가신다~

학교에서 드로잉 수업을 할 때면,
나는 강의실을 천천히 거닐며 학생들 뒤에서 학생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조용히 관찰한다.
강의실에는 그림을 그리는 선의 소리들이 사각사각하다. 학생들이 선을 그으며 사물을 바라보는 눈빛과 손끝의 움직임. 선을 긋는 방향, 힘. 학생 한명 한명을 뒤에서 보다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그리는 사이에 놓치는 부분이 보이면 빠르고 조용히 다가가 지금 놓친 지점을 짚어주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학생들은 언제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냐며 놀라곤 했다.
그래서 학생들이 부르는 내 별명은 ‘암사자’였다. 조용히 매복하다가 정확한 순간에 달려드는 모습이 암사자를 닮았다나 뭐라나.
교수님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면 심장이 쫄린다며. ㅎㅎㅎ

날 그렇게 부르던 녀석들, 어디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별명 속에 담긴 내 얼굴
암사자 교수의 드로잉 수업 과제들 🙂

별명 짓기의 달인, 부장님

우리 학과 부장님은 그 사람의 특징 하나를 콕집어 별명 붙이는 데 탁월한데,
둥글둥글 헤어롤을 막 말고 온 듯한 헤어 스타일의 강사님은 ‘브로콜리 교수님’ 이라 불렀고,
한 옥타브 높은 콧소리와 부잣집 사모님같은 말투의 강사님은 ‘내 귀에 캔디’ 줄여서 ‘캔디 교수님’,
오은영 박사를 닮은 제스처를 종종 쓰는 현교수님은 ‘현박사’, 등등.
그런 부장님이 내게도 붙인 별명이 있었으니… ‘다마네기 상’이었다. 저 사람은 까도까도 새로운게 계속 나온다며. ㅎㅎㅎㅎ

별명 속에 담긴 내 얼굴

반전있는 여자, 다마네기 상~

반년 만에 다시 수업을 시작하던 날, 교수실에 들러 인사를 하자
“어머, 교수님. 살 빠지셨어요.”라는 인사를 받았다.
“조금 빠졌어요. 운동을 시작했거든요.”라고 하니
“운동 싫어 하잖아.”라는 부장님. 무슨 운동을 하냐고 물으시길래
“킥복싱이요.”

여자 교수님들은 “어머, 킥복싱이라고요?”라며 놀라워했고, 부장님은
“오오~ 역시, 다마네기 상이야!”
하며 놀리셨다. 그래서 나는 장난스럽게 한마디 덧붙였다.

“부장님, 조심하세요.ㅎㅎㅎㅎ”

별명 속에 담긴 내 얼굴

‘암사자’와 ‘다마네기 상’

미술 수업을 하는 ‘암사자’같은 나,
까도까도 새로운 반전이 있는 ‘다마네기 상’같은 나,
길치에 허당끼 가득한 나,
책 읽고 글 쓰며 침잠의 조용함을 즐기는 나,
글로브 장착하고 펀치와 킥을 날리는 나,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해 늘 자신을 책찍질하는 나,
고양이들과 늘어져 방전됐다고 위로받는 나,
다정한 이의 섬세한 배려에 웃음과 눈물이 터지는 나,

이 모든게 ‘나’여서, 오늘도 나는 나를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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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uh profile

디자인, 일러스트, 그림책 등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강의해왔습니다.
현재는 분당에서 ‘그림산책’이라는 미술 교습소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고 책을 만드는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읽고, 쓰고, 그리는 일상을 차곡차곡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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