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개 낀 나무숲을 연필로 한참 사각사각 그리던 때가 있었다. 종이 앞에 온종일 엎드려 있고만 싶었던 시절. 아침이면 흰 종이 위로 닳아가는 연필의 마찰음을 남은 생애 동안 듣고 살겠노라 다짐했다가, 저녁이면 재능 없음에 울적해지기를 파도처럼 반복하던 시간들. 그러니 멋진 숲 사진이 올라오는 포스팅을 마주할 때면 마음속에 저 나무들을 보고 싶어 속수무책으로 동경이 피어오르던 나날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그때의 내가 감행한 어느 날의 돌발 행동. 내가 좋아하는 숫자 ‘9’와 ‘숲’이 섞인 아이디에 네모난 화면 너머 저런 곳을 다니시는 분이 궁금해서 였는지, 나무들 사진에 감탄하다 매혹된 것인지, 혹시 저기 어딘지 알려주실 수 있냐고 나도 모르게 홀린 듯 메시지를 보냈다.
김애란 작가가 세계는 만날 줄 몰랐고 만날 리 없는 것들이 만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다고 했던가. 그 첫날의 통화와 만남을 여전히 기억한다. 묘한 인연은 그 후로도 이어져, 당신이 좋아할 것 같다며 고즈넉한 곳들을 종종 추천해주셨다.
남해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바닷가 절경을 햄버거를 먹으며 누릴 수 있는 곳부터, 길치인 내가 헤매지 않도록 지도 위에 입구까지 세심하게 표시해 보내주던 저수지의 비밀스러운 숲, 사람 없을 때 다녀오라며 일러준 바닷가 등등.
나는 시간과 시간 사이, 마음의 틈이 생길 때마다 그가 일러준 곳들에 슬며시 눈도장을 찍고 돌아왔다. 다랭이 마을의 맘스터치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그가 알려준 절경을 눈에 담아보고, 천안의 한옥 카페에서 책을 읽던 오후, 저수지 나무숲 앞에 앉아 한참 멍때리고 돌아온 하루, 하조대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해변을 거닐던 어떤 날의 기억들이 쌓였다. 남해, 천안, 남양주, 강원도 그리고 제주까지 그 다정한 지도는 딱 내 취향에 맞게 좋았다.
취향이라는 건 어떻게 한 사람에게 형성되는 걸까. 그런 취향들의 합들이 한 사람의 풍경을 만들어 주는 걸까. 나무라면 그 결을 보고 있어도 좋기만 한 나에게 나무 사진가가 찍고 글을 쓴 ‘느린 인간’은 세계 곳곳의, 우리나라 곳곳의 나무들의 사진들과 나무 이야기가 있어 아껴 읽었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나무들의 글을 읽고 사진을 보며 올해는 슬며시 나무들을 보고 올까 짬이 나는 시간을 세어본다.

그가 찍어 올려주었던 몇몇 나무의 이미지를 기억한다. 휘고 구부러진 팽나무의 실루엣, 인간의 시간으로는 가늠하기도 어려운 나무의 세월이 쌓인 두 팔로 안을 수 없는 보호수, 양재천의 나무들, 벚꽃이 필때면 날리던 흰 꽃에 이름을 헷갈렸던 내가 물어봤던 조팝나무.
나무는 좋아하지만 나무를 잘 모르는 나를 또 엄청 놀리시며 이것저것 알려주실테지. 나는 아직도 그를 잘 모르겠고, 여전히 숲같고 안개같아 헤매지만 고양이 같은 나를 집사처럼 챙겨주시는 것들이 늘 넘치게 고맙다.
슬렁슬렁 나무들 사이에 안개처럼 있다가 올 수 있는 숲이 있냐고 물어봐야겠다. 고양이가 보내는 눈인사처럼 안경 너머의 눈을 마주하고 ‘찡긋’ 웃어줘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