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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 좋은 방

울기 좋은 방

다시 읽고 싶은 문장

마음이 어떤 상태가 되면, 꼭 다시 꺼내 읽고 싶은 문장들이 있다.
책 표지의 컬러를 떠올리고, “제목이 이게 맞던가?” 생각하며, “어디에 꽂아두었더라” 하며 찾는다.
그렇게 다시 꺼낸 책, 『울기 좋은 방』.
도톰한 책에 뭐 이리도 모서리를 많이 접었는지… 도톰한 책, 접힌 모서리들, 그리고 종이의 감촉까지— 책의 물질성을 좋아하는, 조금은 고집스러운 아날로그적 나.

울기 좋은 방

울기 좋은 방

그녀는 눈물이 많은가 보다. ‘우연히 커피 볶고 내리는 사람’이라는 한 문장으로 끝나는 저자 설명에도, 책의 표지에도 눈물방울이 뚝뚝 하나씩 떨어지고 있다.

눈물이 수도꼭지처럼 터지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잘못했던 일은 없었는데, 모든 게 내 잘못인 것 같아 숨을 쉬며 사는 게 미안했던 마음을 견디고 있었다. 그 시간을 터널처럼 지나오며 자주 웅크리고 자주 울었다. 그 시절 읽으며 그녀처럼 많이 울었던 책. 다시 꺼내 들면 딱 내 몸 사이즈에 맞는 작은 방에 들어가 울고 나올 것 같다.

다시 읽으며 선명해지는 것들

이 책은 부드럽고 말랑한 카스테라 같다. 사르르 녹고, 달콤한 맛만 남는 그런 빵.
그리고 말캉한 젤리같다. 역시 달달함은 기운이 없을 때 먹어야 하는 것 같다.

마음이 너무 딱딱하고 말라 비틀어졌을 땐 읽지 말자. 딴지를 걸 수 있으니까. 무언가 달달한 한 수푼이 필요할 때—커피랑 같이 홀짝거리며 먹다 보면 어느새 한 접시를 비워버리는 것처럼, 예전에 읽었던 문장들이 다시 눈에 들어오고 새롭게 또 밑줄을 긋다 보니, 어느새 책을 호로룩 마셔버린 듯 하다.

비비언 고닉, <끝나지 않은 일> / 글항아리

고닉은 다시 읽기에 대해, 새로운 의미들을 발굴해 그 위에 양피지처럼 의미를 덧쓰게 된다고 말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다시 읽으면 천천히, 단단히, 깊이를 확보하고 읽는 독자의 경계를 확장하며 진화한다고.
몇 년 만에 다시 마주한 문장들을 읽으며, 고닉처럼 나도 조금 더 단단한 심장으로 진화하게 된 걸까?

깊이 새겨진 문장들

그녀는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지인들에 대해서, 읽는 책에 대해서, 여행에 대해서, 커피를 내리는 수업에 대해서 끊임없이 글을 썼다.
짧은 글에는 커피 이름도 함께 적혀 있는데, 자신에 대한 고백과 지인을 향한 마음, 그리고 관계에 대한 글 사이사이에는 그럴 때 마시는(혹은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커피에 대해 써 있다. 읽다 보면 커피 종류가 이렇게나 많은가 싶다.

울기 좋은 방

내가 이런 마음 상태여서였을까. 속상한 마음이 김밥 옆구리처럼 터져나와 결국 울음을 쏟아버렸다. 눈물이 나는 나 스스로가 당황스러울 만큼,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옷에 얼룩이 생겼다. 이렇게 울어보는 게 오랜만이었다.
마음이 개운해졌다.

울기 좋은 방


김밥이 옆구리가 터지게 되는 것은 밥과 속이 너무 가득 찼기 때문이 아닌가. 김은 무슨 죄가 있나. 잘 싸고 싶을 뿐이었을 텐데 말이다. 내 안에 속상한 마음이 가득 차 닭똥같은 눈물이 터졌나 보다. 그래도 이 달달한 문장들을 먹고 울고 나니 일어날 힘이 생겼다.

나는 지금 일어서는 중이다.


울기 좋은 방

지은이 용윤선
펴낸곳
1판 1쇄 2014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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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uh profile

디자인, 일러스트, 그림책 등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강의해왔습니다.
현재는 분당에서 ‘그림산책’이라는 미술 교습소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고 책을 만드는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읽고, 쓰고, 그리는 일상을 차곡차곡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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