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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필요한 밤

위로가 필요한 밤

그런 날이 있다

그냥 조용히 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고 싶은 날.
아무도 못 찾게 괜히 숨을 멈추고 숨어버리고 싶은 날..
평소 도레미파솔~ 솔을 치던 텐션이 한 옥타브 내려가 시라솔파미레를 치다가 급기야는 막대기가 툭! 떨어진 느낌. 며칠째 이런 마음이 계속이다.
수업 시간에는 하하하 잘도 웃지만, 수업과 수업 사이에 혹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며 생각한다. 뭐가 문제일까.

위로가 필요해

방전된 날엔 위로가 필요하다

금요일 저녁 퇴근길. 짬뽕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짬뽕이라니!
운전대를 잡고 중국집으로 방향을 틀까 망설이다가, 두부 요리나 다소 밍밍하고 담백한 음식을 선호하는 내가 짬뽕이 땡겼다는 것은 스트레스가 꽤 쌓였다는 걸 자각하며 집으로 집으로 집으로 들어왔다.
몇 주 주말 연이은 가족행사와 개인 프로젝트로 동영상 수업을 들으며 쉬지 못했더니 평소보다 잠이 늘었다. 그것으로 괜찮은줄 알았는데, 마음은 아니었나 보다. 방전! 방전! 방전이라고 보내오는 신호였다.

그래, 이번 주말은 OFF 모드다!.

위로가 필요해

충전의 루틴

늦잠을 잤다. 쨍한 햇살에 눈을 떴다가 다시 이불 속으로 쏙. 라디오를 켜 익숙한 노래를 백색소음 삼아 스르르 코어 상태에 빠졌다. 다시 눈을 뜨니 비가 쏟아졌다. 주륵 주르륵. 잠시 그쳤다가 다시 쏟아지고, 또 그치고, 또 내리고. 내 상태 같다.

책을 읽으려고 해도 두 장을 넘기지 못하겠다. 책을 덮고 일어나 커피를 내린다. 비가 내리는 날의 커피는 더 맛있다. 커피 향이 공기 중에 더 오래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머그를 잡고 앉으니 냥이 한 녀석이 발치에 와 앉는다. 곧이어 골골송이 들려온다. 첫째 녀석의 부드러운 털이 느껴진다. 따뜻하다.
작은 녀석이 장난감을 물고 온다. 눈을 마주치니 “냐앙~” 한다.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지~ 요즘 집사가 잘 놀아주지도 못했지~ ” 장난감을 들자 세로로 길쭉했던 눈동자가 커지며 동그래진다. 검은 동공이 신나고 행복하게 반짝거린다.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장난감을 뛰어가 잡아올 준비를 마친다.

녀석들과 놀아주고 털을 빗어주고 캔을 따 두 녀석에게 나눠준다. 녀석들은 맛있게 먹고 각자 좋아하는 자리로 가 꿀같은 단잠을 잘 것이다.

저 부드러운 작은 털뭉치들. 보고 있으면 웃게 만드는 작은 온기들.

위로의 방식

작은 방에 들어갔더니 글로브가 눈에 띈다. 며칠째 운동을 못 갔다. 글로브를 끼고 거울 앞에 서서 쉐도우를 시작했다. 쨉쨉-투. 좋아. 힘이 빠진 몸에선 오히려 펀치가 잘 나갔다. 몸 회전에 맞춰 쭉 일자로 뻗는 느낌. 그렇게 많이 듣던, 힘 빼고 친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감이 온다는 기분에 킥도 차 보겠다며 뒷발을 돌려 찼다. 그런데!!!!

(쉐도우로 킥을 차면 200도 이상 몸이 회전한다) 몸이 휙 돌아가는 순간-‘아차! 앞발 점프가 너무 높았어!’ 매트도 없는 방바닥에 중심을 잃은 몸뚱아리가 철푸덕-

무릎이 쓸려 까진 곳이 하얗게 변했다가 붉어졌다. 욱신거림과 쓰라림이 몰려온다.
곧 고구마색으로 멍들 무릎을 보니 서글퍼졌다. 작은 방에서 아프다고 끙끙대고 있으니 냥이 두 녀석이 쪼르르 왔다.

‘엉엉… 집사가 이렇게 허당이야. 매트 깔려 있는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자앙… ‘

널브러져 쉬는 냥이들처럼 나도 그냥 바닥에 널브러졌다.
두 녀석이 내 곁에 와 앉는다. 찬 방바닥에 누워, 나를 충전해주는 것들을 헤아려본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으로 충전하고 위로받을까?

욱신거리지는 무릎을 절뚝이며 일어난다.
저녁은 얼큰한 짬뽕으로 나를 위로해야겠다.
오늘은, 위로가 필요한 밤이다.

위로가 필요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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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uh profile

디자인, 일러스트, 그림책 등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강의해왔습니다.
현재는 분당에서 ‘그림산책’이라는 미술 교습소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고 책을 만드는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읽고, 쓰고, 그리는 일상을 차곡차곡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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