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개의 이름을 가진 사유가, 페터 비에리
한 작가의 책을 거의 다 읽어갈 즈음, 책방지기가 다음 작가를 정하자며 물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작가나 추천하는 작가가 있나요?”
나는 책장에 ‘다시 읽고 싶은 책’ 칸이 따로 있다.
몇몇 이름을 떠올리다가, 재작년에 몰아 읽었던 한 작가가 생각났다.
그는 철학서에는 본명을, 소설에는 필명을 쓴다.
소설을 너무 재미있게 읽고도 같은 사람인 줄 몰랐다.
『자기 결정』을 재독하며 문장마다 멈춰 서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그의 책을 모조리 사들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와… 이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었어?”
어쩐지, 너무 좋더라.
그의 이름은 페터 비에리.
그리고 소설가로서는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을 쓴다.

페터 비에리, 『자기 결정』부터!
페터 비에리는 ‘언어 철학’의 대가이자, 우리에게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나 또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오래전에 읽고 나중에 그의 철학서를 접했다. 그는 소설책이나 철학서에서도 인간의 의지와 존엄성, 그리고 삶의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의 강연록을 엮은 이 얇은 책 『자기 결정』은 삶의 제약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나 자신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그 경로를 철학자의 정교한 언어로 설명하고 묻는다.
- 자기 결정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 자기 인식은 왜 중요한가
- 문화적 정체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얇은 책이지만, 질문은 가볍지 않다.
내 마음을 멈춰 세운 문장들: 자기 결정을 위한 사유의 조각들
하나는 자신의 사고와 감정과 소망을 주관하여 말 그대로 삶의 작가요 그 주체가 되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히 경험이 펼쳐지는 무대가 될 수밖에 없는 삶을 가리킵니다. 자기 결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차이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기대나 우연한 사건에 떠밀려 살아간다. 비에리는 여기서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거리 두기’를 강조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자아상과 현실 사이에 어떤 간극이 있는지 인지하는 것, 그것이 자기 결정적 삶의 시작이다.
자아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
그 틈을 메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자기 인식’이라고 그는 말한다.
기억은 이야기될 때 비로소 이해 가능한 것이 된다. (…) 기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아떨어지도록 언제나 적당한 첨삭이라는 요소를 포함합니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야말로 자기 삶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하기 때문이지요.
기억은 스스로 정리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이야기함으로써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과거를 말하는 일은 언제나 선택과 편집을 동반한다.
그 안에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이 묻어난다.
내가 어떤 단어를 고르는지, 어떤 문장을 남기고 지우는지,
그 선택이 곧 나라는 사람의 윤곽이 된다.

붉은 표지 속 나무 일러스트
참고문헌을 제외하면 채 1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이 얇고 강렬한 빨간 책. 평소 좋은 문장을 만나면 책 모서리를 접곤 하는데, 이 책은 모든 페이지를 접어야 할 것 같아 차마 한 페이지도 접지 못했다.
책을 덮고 나서 표지를 보니 나무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빨간색 표지에 라인으로 된 간단한 일러스트지만 왜 표지에다 나무 그림을 넣었을까? ,그 의미를 가만히 곱씹게 되었다. 본문 어디에도 표지의 나무에 대한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존재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불필요한 가지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나무‘라는 생각이 닿자 이 책의 주제와 딱 떨어지는 디자인이구나 싶다.
“타고난 것들은 결정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마음먹은 대로 살 수는 없다. 원하지만 되지 않는 일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묻는 일.
내가 스스로에게 묻고 결정하는 것들이 나의 삶을 조금씩 만들어간다.
이 책을 세 번째 다시 읽으며 나는 여전히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그리고 또 한 번, 조만간 다시 읽어야겠다고 책장에 꽂아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