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동, 해야겠다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학원과 집 사이는 5.4km.
그 거리를 퇴근하며 1시간 좀 넘게 걷는 것이 내 나름대로의 ‘운동’이었다.
하지만 이 무더위, 이 사악한 열기는 걷기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고민.
운동은 해야겠고… 그런데 뭘 하지?
그때부터 슬슬 고민이 시작됐다.
재밌게 할 수 있는 운동, 뭐 없을까?
달리기가 자기를 살렸다는 J의 말이 꽤 오랬동안 마음속에 묵직하게 자리잡았다.
운동하고 학원에 출퇴근하며 수업하고 작업하는 루틴을 만들고 싶은데…
그런데 문제는, 나는 체육과 거리가 멀다는 것.
나에게 맞는 운동이 있을까? 신체적 조건과 심리적 조건 모두를 고려해야 했다.
- 햇빛 알러지가 있으므로 실외 운동은 패쓰.
- 단체로 떼지어 움직이는 운동은 질색이지만, 1:1은 또 너무 부담스럽다.
- 학원과 집 사이 동선 중에 운동하면 좋겠다.
- 요가, 필라테스? 해봤지만 재미가 없어서 탈락.
- 수영? 예전에 배워봤지만,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는다.
복싱이 재미있고 다이어트에 좋다는 오래전 들었던 말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하지만 ‘복싱’이라는 단어는 쉽게 다가서기 어려웠다.
며칠 뒤, 성인 취미반 수업 시간.
운동 이야기를 꺼내니 미나님이 눈을 반짝이며 추천 리스트를 쏟아냈다.
태권도, 유도, 검도, 복싱까지 섭렵한 그녀가 내게 하는 말.
“복싱도 재미있지만, 킥복싱 강추예요. 킥을 딱 차면 ‘퍼억~’ 하는 소리가 진짜 통쾌해요!”
운동 마니아 미나님은 주짓수에 정착했고, 지금은 여행을 가도 현지 체육관에 들러 겨루기를 할 만큼 열정적이다.
“쌤, 저희 주짓스 체육관 오시면 제가 사뿐이 던져드릴게요~ㅎㅎㅎ”
주짓수는 그 말 한 마디에 조용히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나는 날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또 일주일이 흘렀다. 이렇게 고민만 하다가 시간만 흘러가는 이 흐름, 익숙하다. 😭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검색을 눌렀다.
학원 근처, 킥복싱 체육관.
15분 거리에 하나가 있었다. 오~ 이정도 거리면 아주 좋아! 거리 합격.
1일 체험 신청 버튼이 보였다.
냉큼 클릭하고, 겁없이 바로 내일 저녁 체험 레슨을 신청했다.


킥복싱, 내 손에 글로브라니!
이 생경한 감정
다음 날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는 이미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낯선 공간, 낯선 분위기, 묘한 긴장감.
머리털 나고 평생 처음으로 체육관이라는 곳에 발을 들인 순간이었다!!
관장님이 건네준 글로브를 손에 끼우는 순간, 익숙했던 내 손이 갑자기 낯설었다.
무거운데, 단단하고. 어색한데, 어딘가 묘한 느낌.
글로브를 낀 손은 분명 내 손인데, 내가 아는 그 손이 아니었다.
이게 진정 내 손이란 말인가, 하는 그런 생경한 감정.
“자, 발을 이렇게 11자로 놓고 살짝 반 보 앞으로. 이게 기본 자세에요. 그리고 이렇게, 손을 뻗어서 쨉. 다시 원, 투.”
알려주는 대로 나는 조심스럽게 글로브 낀 주먹을 내밀었다.
“퍽.”
의외로 큰 소리. 그리고 이상하게 통쾌했다.
몸은 서툴고 동작은 엉성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글로브를 낀 내 손의 낯선 느낌이 묘하게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기본 자세, 기본 동작 몇 가지를 따라 해본 1일 체험.
그 짧은 시간, 생경한 손의 감각이 나쁘지 않았다.
수많은 운동을 시작했다가 흐지부지했던 기억들이 스쳐갔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는 느낌.
그래서 일단, 1개월 등록. 할인율 높은 장기 등록은 패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건 결심보다, 가벼운 실행이었다.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킥복싱의 세계.
나는 그렇게 조심스레 한 입,
그 맵고 뜨거운 맛을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