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uh logo

킥복싱 금지령, 잠시 다른 세계로 잠수하다_6

강도가 올라간 체력 운동

점심때의 킥복싱 멤버들은 초심자가 없어서인지 관장님의 체력 훈련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했다. 그날의 체력 운동은 배틀 로프와 월볼. 길고 두껍고 무거운 로프를 양손에 잡고 파도 모양을 만들며 흔들고, 스쿼트 동작으로 앉았다 일어서며 8kg의 공을 벽으로 던졌다가 다시 받는 고강도 전신 운동이었다.

묵직한 공을 받다 순간적으로 손가락을 삐끗했는데, 운동하다 생기는 멍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손가락이 붓고 멍이 들기 시작했다. 통증은 없었지만, 시각적으로 보이는 변화는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병원을 찾았다.
“운동하다가 손가락을 삐끗했어요.”

사실 아픈 것보다 더 불편했던 건 손가락이 부어서 구부러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글러브를 못 끼겠네, 오늘 운동은 못 가겠네.’
그 정도의 가벼운 생각이었다.

병원에 온 김에 오른쪽 손목도 함께 봐달라고 했다. 오래전부터 푸시업을 하면 욱신거리던 곳이었다. 엑스레이를 촬영한 뒤 의사 선생님을 만났을 때, 왼쪽 네 번째 손가락 뼈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여기 뼈에 금 간 거 보이시죠? 인대도 끊어졌네요. 킥복싱 하신다고요?”

나를 보며 눈을 크게 뜨시더니 덧붙이셨다.
“보통 중·고등학생 남자아이들이 많이 다치는 부위인데… 이 나이에…”

오른쪽 손목은 언제 통증이 있냐고 물으셔서 무언가를 들때나 푸시업을 할 때 욱신거린다고 답했더니,
“손목이 아픈데 푸시업을 하셨어요? 여기 인대가 끊어진 게 보이시죠. 아프면 푸시업을 하시면 안 되죠. 제 주변 여자분들 중에는 푸시업 하시는 분은 없어요. 와…”

머쓱해하면서 일주일 정도 쉬면 되겠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운동요? 한 달은 무조건 쉬셔야 합니다. 정 하고 싶으시면 유산소만 하세요.”

일주일 정도 쉬면 되겠지 했는데, 한달이라니. 이제 막 스파링 연습에 재미를 붙이려던 참이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한 달 운동 금지령’이 내려졌다.

프리다이빙

사진 : 딥스테이션

프리다이빙 3주, 그리고 깨달음

운동을 못 한 지 2주가 넘어가자 몸보다 마음이 먼저 답답해졌다. 손을 덜 쓰고, 충격이 없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 떠오른 건 수영이었다. 스포츠센터에 가서 강습 등록을 문의했지만, 신규 회원은 날짜도 정해져 있고 레벨도 나뉘어 있어 바로 시작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망설이기만 했던 프리다이빙이 떠올랐다.
검색해 보니 의외로 분당 쪽에 바로 신청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시간도 조율 가능했다. 새로운 것을 도전해보라는 책의 내용도 생각나고, 그래서 도전해본 프리다이빙.

프리다이빙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세계였다. 숨을 참고 깊이 내려가기 위해서는 수압을 견디는 이퀄라이징이라는 호흡법이 필요했다. 발아래로 아찔하게 열려 있는 25m 수심, 잠수풀이라는 낯선 공간, 물속의 고요.

새로운 것을 배우면, 잘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이렇게 못할 수 있나’ 싶어 겸손해진다. 문득 나에게 그림을 배우는 분들도 이런 마음일까, 나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계속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건지도.

프리다이빙

사진 : 딥스테이션

프리다이빙

사진 : 딥스테이션

다시 도장으로, 그리고 근육에게

프리다이빙은 재미있었지만, ‘운동을 했다’보다 ‘레저를 하고 왔다’는 감각이 더 강했다. 킥복싱을 쉰 지 5주 차가 되자 다시 도장을 찾았다.

문을 열고 관장님께 인사를 드리자 반갑게 맞으시며 당부 또 당부하셨다.
“절대 무리하지 마세요.”

그날은 3분 3라운드 자유 미트 운동. 펀치보다는 킥 위주로, 5주만에 하는 킥복싱이었다. 미트를 잡아주시며 “그래도 안 잊어버리셨네요.” 하신다. ㅋㅋㅋ

집에 돌아와 저녁이 되자 온몸에 몰려오는 근육통.
그래, 이게 운동이지. ㅎㅎㅎㅎㅎ

와… 5주 쉬었더니 내 근육들은 어디로 간 거니? ㅠㅠ
돌아와라, 근육들아.
이 언니가 잘해줄게.


첫페이지로 이동
인스타로 이동

sosuh profile

디자인, 일러스트, 그림책 등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강의해왔습니다.
현재는 분당에서 ‘그림산책’이라는 미술 교습소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고 책을 만드는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읽고, 쓰고, 그리는 일상을 차곡차곡 기록합니다.

Related Posts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비비언 고닉의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를 읽으며. 뉴욕이라는 거리를 오가며 고닉은 대문자 E의 할머니처럼 지나는 이들을 관찰하고, 물어보고, 궁금해한다.그리고 혼자 된 밤에 그들을 소환해...

편안함의 습격

편안함의 습격

『편안함의 습격』을 읽고 읽다가 육성으로 웃음이 빵 터졌다!아니, 마이클 씨, 오지의 북극 순록 사냥 원정기를 이렇게 풀어내기 있습니까?!!나는 이 위트가 너무 맘에 들어 새벽 내내 책을 붙잡고 읽었다....

9년만에 다시, 순천만

9년만에 다시, 순천만

9년 만의 재회, 나를 찾아가는 길 멀다. 멀기도 참 멀다. 지도앱를 켜고 도착지를 입력하니 4시간 반이 찍힌다. 왜 나는 하필 이 먼 곳으로 다시 향하는 것일까? 삶의 어느 순간, 멈춰 서서 지난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