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깼다.
화장실을 다녀와 시간을 확인하니 어김없이 새벽 세 시 반이다. 바로 잠들면 좋겠지만, 십중팔구는 눈이 말똥말똥해진다. 몇 번을 뒤척이다가 결국 잠을 포기하고 일어나 버린다. 이쯤 되니 이것도 하나의 루틴이다.
다행히 이번 주까진 겨울방학이라 수업은 오후에 있다. 침대에 걸터앉아 라디오를 백색소음처럼 틀어 놓고 졸았다 깼다를 반복하며 한두 시간쯤 게으름을 피우다가 천천히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도 그렇게 새벽에 깼다. 눈이 간지러워 왼쪽 눈을 비볐다. 좀처럼 간지러움이 해소되지 않아 오래 비볐더니 따가운 기운이 남았다. 아침에 거울을 보니 눈이 충혈되어 있고, 흰자가 부어 있었다. 눈동자를 굴릴 때마다 이물감이 느껴진다. 검은 동공이 부은 흰자 틈 사이에 책갈피처럼 끼어드는 느낌.

눈의 파업이 시작되다
오후가 되자 눈에 물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자가 치유를 하려는 듯, 눈물이 툭 하고 한 방울씩 밀려 나온다. 종일 눈에서 또르르 또르르 제멋대로 흘러내린다. 울고 있는 것도 아닌데 눈물이 난다는 건, 생각보다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게다가 물기를 머금은 시야는 사물을 왜곡시켜 책 한 장 읽는 일도 쉽지 않다.
시력은 얼마 전부터 급격히 나빠졌다. 건조증은 주기적으로 찾아오고, 안경 없이 오래 살아온 나는 아직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안경을 찾는 일이 어색하다. 뿌연 상태로 일상을 보내는 날이 더 많다. 일을 할 때와 책을 읽을 때만 어쩔 수 없이 안경을 쓴다. 난시가 심해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면, 안경을 쓰고도 글자가 그림자를 가진것처럼 종이위에 번져 보인다.
마침 읽고 있던 안규철 작가의 책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에 안경에 관한 문장이 나온다.

내 몸에서 가장 투명하고 밝았던 부분에서 발생한 이 파업은, 좀 과장하자면 세상과 사물들이 조금씩 나를 떠나 소실점을 향해 출발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눈이 어두워지는 만큼 세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유쾌하지 않은 현상의 가장 기이한 특성은 가까울수록 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먼 곳의 사물들은 예전처럼 선명한데, 손에 잡히는 근거리의 것들은 초점이 흐려지고 윤곽선이 무너지며 서로 뒤섞인다. (…)어떤 대상을 자세히 보려 할 때 그것과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
가까울수록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팔을 뻗어 조금 멀리 두어야 또렷해진다는 것.
나는 그 문장을 읽다가 잠시 책을 내려놓았다. 요즘 내 눈만 그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너무 가까이 붙잡고 있던 것들, 지나치게 들여다보려 했던 관계나 일들. 어쩌면 그것들 역시 거리를 필요로 했던 건 아닐까.
시력이 나빠졌다는 사실은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사물을 보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이 물리적 변화는, 묘하게도 마음의 일과 닮아 있다. 너무 가까우면 윤곽이 무너진다. 약간 떨어져 있어야 형태가 보인다.
오늘 하루 종일 흘러내린 눈물은 단순한 자극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미처 두지 못한 거리들에 대한 신호였을까.
흐릿한 시야로 창밖을 본다.
조금 물러서서 보니, 세상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초점을 다시 맞추는 중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