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조라는 단어와 나
관조의 국어 사전을 찾아보니,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봄.”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이렇게 관조적인 태도의 글이라 내가 궁금했다”고 말해 준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시인 S도 내게 무언가 변했다며 “관조가 생겼구나!” 하고 말했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나의 무엇에서 그런 기운이 읽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관조하는 삶』 그리고 『피로사회』
우리는 오로지 노동과 성과를 통해 삶을 지각하므로 무위를 결함으로, 가능한한 빨리 제거해야 할 결함으로 여긴다. 활동이 인간의 실존을 남김없이 흡수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실존은 착취 가능하게 된다. 우리는 무위를 느끼는 감각을 상실해간다. 무의는 무능도, 거부도, 한낱 활동의 부재도 아니라 독자적인 능력이다. … 무위는 약점이나 결함이 아니라 집약성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자연스레 『피로사회』가 떠올랐다.
책을 다시 펼치니 첫 문장,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에 밑줄이 그어있다. 이 얇고 작은 책은 읽으며 격하게 공감하고 내 안으로만 향해있던 시선을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과다한 노동과 성과사회”라는 시대적 자아상으로 볼 수 있게 해준 강력한 책이었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하는 이와 만나면 마음의 유대감이 빠르게 커지곤해서, 종종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책이기에 이번에 나온 책도 망설임없이 읽기 시작했다.

행위와 관조 사이에서
책은 내내 우리가 이 바쁘고 빠른 속도의 현재를 살아가면서 놓치고 있는 무위의 힘에 대해 말한다.
책 곳곳에 밑줄과 모서리를 접는다.
시간이 없으면, 깊은 호흡이 없으면, 같음이 지속된다. 자유로운 정신이 절멸한다. “생각할 시간과 생각하는 쉼이 없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일탈하는 견해를 품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일탈하는 견해를 증오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삶이 엄청나게 가속하는 가운데 정신과 눈은 반쪽짜리거나 그릇된 보기와 판단하기에 익숙해지고, 누구나 달리는 열차 안에서 내다보며 땅과 구름을 배우는 여행자를 닮아간다. 독립적이고 신중한 인식 태도는 일종의 미친 짓으로 취급되다시피 하고, 자유로운 정신은 비난의 대상이다”_35p.

바라보기 위해 태어났다
뭐 하러 세상에 태어났느냐는 질문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낙사고라스는 “바라보러”라고 대답한다. … 존재하는 것 앞에서의 경탄이 탄생을 정당화한다. …. “행위하는 삶은 관조하는 삶을 향한다.”
던져진 존재로 살아가는 인간으로, 왜 태어났냐는 질문에 이토록 아름다운 답을 읽어본 적이 없다.
“바라보기”위해 태어났다는 문장이 너무 좋아서 문장을 눈으로 몇번이나 쓰다듬는다. 어떻게 살면 저런 언어를 말할 수 있는 걸까?
언젠가 다음에 시간이 아주 많은 날, 사랑하는 이를 앞에 두고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눈으로 그림을 그리듯 천천히 선 하나하나를 바라보고 싶다고.
인간적 현존재는 오로지 복합적인 삶, 곧 행위하는 삶과 관조하는 삶의 협력에서만 실현된다. … 그렇게 행위하는 삶은 우리를 관조로 이끌고, 관조는 (…) 우리를 다시 행위로 소환해야 한다. …
행위하는 삶이 관조하는 삶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행위하는 삶은 과도행위로 타락하고 영혼뿐 아니라 온 지구의 소진으로 귀결된다._135p.
한나 아렌트의 책 <행위하는 삶> 속의 ‘행위’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듯 짚어보는 후반부 글은 아렌트의 글을 읽지 않아서인지 좀 어려웠다. 그러나 아렌트가 놓친 관조의 힘에 대해 ‘행위하는 삶’과 ‘관조하는 삶’ 사이를 오가며 살아야 한다는 마무리. 정-반-합으로 귀결되는 결론이, 역시 철학가답다.

내가 꿈꾸는, 관조하는 삶
얼마 전 B와 통화하며, “저 좀 더 조용히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더니, 그는 지금도 충분히 조용히 살고 있다며 웃었다. 출퇴근 길도, 학원에서의 수업도 시끄러울게 없다고.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정작 내가 ‘조용한 삶’이 무엇인지 깊게 짚어보지 않은 채 튀어나온 말이었음을 깨달아 괜히 입을 오리처럼 쭉 내밀고 말았다.
그날 이후 생각이 남아, 비가 올 듯 흐린 날 물의 정원을 찾았다. 천천히, 사람 붐비지 않는 길을 걸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조용히 산다’는 건 어떤 하루일까? 이런 자연을 눈만 뜨면 볼 수 있는 환경일까? 내가 바라는 ‘조용한 삶’의 환상은 무엇일까?”
내 안에서 질문의 답을 찾으며 문장으로 완성되려면 더 많은 무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행위와 관조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면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책은 올초에 샀는데 완독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읽다가 다른 책으로 넘어가 한참 손에서 놓았다가 이제야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는데, 과연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했는지 스스로 반문이 생겨 다시 읽어야 할 책칸에 꽂아두고 다시 읽어보자 다짐한다.
관조하는 삶
지은이 한병철
옮긴이 전대호
펴낸곳 김영사
초판 1쇄 2024년 10월 1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