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력이 먼저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야.
네가 마지막에 집중력이 무너지는 건, 데미지를 입은 후 회복이 더딘 건, 실수한 후 복귀가 늦는 건 모두 체력의 한계 때문이다.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라는 외피가 없으면 구호밖에 안 돼.”— 드라마 ‘미생’
장그래에게 싸부가 말한다.
네가 마지막에 집중력이 무너지는 건 체력이 없어서라고. 무너지고 회복이 더딘것도 체력이 문제라고. 네가 하고 싶은게 있다면, 그걸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체력을 키우라고.
드라마 ‘미생’을 뒤늦게 봤을때, 이 장면에서 통감했던 기억이 있다.
서른 후반, 건강이 무너지고 면역력이 바닥을 치던 시기. 바닥까지 떨어진 면역력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아플 때마다 떠올랐던 건 바로 이 대사였다.
“결국 체력이 문제다.”
그래서 킥복싱을 시작하며 세운 목표는 단순했다.
‘복서가 되겠다’나 ‘살을 빼고 말겠어!’도 아니고 ‘운동을 잘하겠다’도 아니었다.
그저 운동을 일상의 루틴으로 만들자.
그리고 조금씩 체력을 회복하자.

체육관에 가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먼저 줄넘기를 한다.
타이머가 울리면 3분 동안 뛰고, 30초 쉬고, 다시 3분.
3분 3 라운드. 몸을 예열하는 준비 운동이다.
준비 운동이 끝나면 오늘의 체력 운동이 다시 10분.
말이 쉽지, 이게 얼마 만의 줄넘기인가.
나는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줄에 발이 걸렸다.
옆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휙휙 넘기는데,
나는 글로브를 끼기도 전에 마음속으로 벌써 몇 번은 좌절했다.
그런데 계속 하다 보니 10초, 30초, 1분…
그러다가 어느 날은 한 번도 안 걸리고 3분을 채워낸 순간이 찾아왔다.
와! 그때의 희열이란!
이 게 뭐라고, 그렇게 기뻤다. ㅎㅎㅎ


사우스포의 원투
나는 오른손잡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몇몇은 왼손을 쓰는 습관이 있다.
설거지를 할 때, 돈을 셀 때(돈을 세어본 게 언제였더라ㅠㅠ), 뭔가를 칠 때.
킥복싱은 주로 사용하는 손에 따라 기본 자세가 달라진다.
오른손잡이는 보통 왼손과 왼발을 앞으로 두는데, 나는 오른손과 오른발을 앞으로 둔 사우스포 자세가 편했다.
알고 보니 이게 흔치 않은 경우라고 한다.
상대방은 거울처럼 같은 방향에서 원투가 나오기에 거리감을 잡기 어려워하고 익숙하지 않아 내가 유리한 구도가 되는 것이다.
분명 오른손잡이인데 킥복싱의 자세는 사우스포.
상대방이 헷갈리는 만큼 나에게는 새로운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관장님도 자세를 잡아주실때 헷갈려 하시는데 ㅎㅎ 나는 은근히 사우스포인게 재미있다.
수업이 끝나면 혼자 남아 샌드백을 치며 연습한다.
‘오~, 오늘은 어쩐지 잽이 잘 뻗어지는 걸?’
혼자 뿌듯해하고 있으면, 관장님이 슬며시 다가와서 하시는 한마디.
“자, 양양펀치 하지 마시구요! 팔을 이렇게 일자로—”
앗하하하하하하. 😂
멋쩍은 웃음이 자동 발사된다.
앞 발을 내딛고 팔을 뻗어- 원, 투.
이 단순한 동작이 왜 이렇게 어렵냐…
오늘도 어제보다 줄넘기 한번 더, 쨉 한번 더를 생각하며 체육관에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