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년,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1층에 꽃집을 오픈했다며 꽃집 사장님이 인사와 함께 떡을 건네 주시며 벽에 붙어있는 그림들을 구경하셨다. 붙어있는 꽃그림을 보시며 “와~ 이런 꽃 그림 그려보고 싶어요. 보태니컬이라고 하는거죠? 나중에 배우러 와야겠어요.” 하신다. 인사드리며 “언제든 환영이에요.” 라는 말을 전했는데, 그 약속을 기억하셨는지 몇 달 후 정말로 문을 열고 수업 신청을 하러 오셨다.
성인취미 수업은 목요일 오전과 월요일 저녁에 진행되는데
아이패드 수업에서 수작업으로 넘어오신 재님,
분당으로 이사 오시고 새로운 취미를 찾다 오신 미님,
기초를 탄탄히 다지기 위해 오신 남님,
자신의 애묘를 그리고 싶어 오시는 수님,
은퇴후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하신다며 열심이신 배님,
그리고 꽃 향기를 가득 안고 오시는 꽃집 사장님까지
각자의 속도와 취향대로 그림을 그리는 잔잔한 시간이 흐른다. 수업은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면서도, 일상과 마음을 나누는 작은 쉼표가 된다.




산책, 너의 의미
어느 여름날, 꽃집 사장님께서 “여름엔 꽃이 잘 안 팔리는 비수기라 꽃집에서 독서모임을 열고 싶어요. 혹시 하면 오실래요?” 하셨다.
독서모임이라… 책은 좋아하지만 독서모임은 한번도 참여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하신다면 당연히 참석하겠노라 약속했다.
그리고 정말로, ‘고요살롱’이라는 이름의 첫 독서모임이 시작되었다.
작은 꽃집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인 7명 중 5명이 바로 그림산책의 수강생들.
그날, ‘자신을 설명하는 키워드’를 적으며 자기소개를 하는 첫 질문에 조금 당황했지만, 이 독서모임에 어떻게 참석하게 되었나 생각해보며 나에게 책의 의미와 학원 이름을 그림산책이라고 지은 것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저는 아래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고요. 학원 이름이 ‘그림산책’인데 이름을 지을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책과 그림을 사랑하고, 둘 다 수업한다는걸 이름에 녹이고 싶어서였죠. 그러다 ‘마음산책’이라는 출판사가 ‘마음에 책이 산처럼 쌓였으면 좋겠다’는 뜻이라는 인터뷰를 찾아 읽게 되었을때
그래, 나도 마음에 그림과 책이 산처럼 쌓였으면 좋겠어. 라며 무릎을 쳤답니다. ㅎㅎ
그런 의미와 산책이 주는 여유로움이 좋아 그림산책이라고 지었어요.
그림과 책을 산책하듯 즐기고, 배우고, 힐링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쉼표를 ㅈ에 올려 ㅊ으로 디자인하고 책이 펼쳐져 있는 모양을 넣어 로고를 만들었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수강생 분들이 “그런 뜻이 있었는지 몰랐어요, 다시 보게 되네요.” 라고 놀라며 말씀하셨다. ㅎㅎㅎ

귀한 산책의 인연들
스승의 날, 학원에 출근하니 문 앞에 카네이션이 달려있다. 아… 이런 감동 🌼
학교 수업도 하고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에서 수업도 하지만, 학원에서의 수업은 내게 또 다른 의미다. 한 달만 뵙고 떠나시는 분도, 꾸준히 오시는 분도, 잠시 쉬러 다녀가시는 분도 있지만
그 모두가 저에게는 귀한 인연이고, 감사한 만남이다.
그림을 배우는 시간이 누군가에겐 잠시의 여유, 누군가에겐 오랜 꿈을 위한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산책이 즐겁고 따뜻하길, 언제나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