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슬픈데요
“안 슬픈데요.”
순간 턱 하고 말문이 막혔다. 얼마 전 아이들과 생존수영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대답이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학원 근처 초등학교에서는 2학년부터 생존수영 수업을 한다고 했다. 운동으로서의 수영이 아니라 물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아이들은 불만이 가득했다.
“그냥 수영하면 되는데 왜 이런 걸 배워야 해요?”
“선생님이 무서워서 장난도 못 쳐요. 너무 싫어요.”
투덜거리는 아이들에게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너희가 생존수영을 배우게 된 건 우리나라에 큰 사건이 있고 난 후일 거야. 예전에 언니, 오빠들이 탄 배가 가라앉은 적이 있었단다. 아주 큰 사고였고, 많은 학생들이 죽었어. 너무 슬픈 일이지 않니?”
그러자 한 아이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안 슬픈데요.”
옆에 있던 아이도 당연하다는 듯 거들었다.
“그게 왜 슬퍼요?”
나는 이 아이들의 날것 그대로의 반응에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왜 저렇게 쉽게 말하지?’, ‘왜 슬프지 않을까.’

감정을 배워가는 계절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아이들은 아직 ‘죽음’을 모르는구나. 죽음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상실을 겪어본 적이 없으며, 소중한 무엇을 잃어본 적도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처음부터 죽음이나 슬픔을 알았던 것은 아니다. 할아버지들은 모두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사진으로만 뵈었다.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만이 희미한 감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빛바랜 노란색 같은 푸근함. 처마 아래 고운 한복을 입고서 환하게 웃고 계시던 모습과 “내 강아지~” 하며 품어주시던 다정한 목소리. 그리고 무화과잼. 어릴 적 외할머니가 뭉근하게 만들어주시던 무화과잼 맛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마트에서 무화과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굳이 한 상자를 사 오게 되는 것도 아마 그 기억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죽음의 무게를 몰랐기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엄마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주저앉아 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눈물의 의미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어떤 기억은 사라져도 작은 감각들은 남는다. 어떤 냄새는 남고, 어떤 목소리는 끈질기게 남는다. 그러다 문득 신해철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가 떠올랐다. 어릴 적 병아리의 죽음이라는 작고 여린 생명을 통해 처음으로 상실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배우게 되었다는 노래.
아, 그렇지. 감정도 배워야 하는 거지. 그래서 아이들 그림책 중에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고 그것을 다루는 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많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이런 마음이구나, 그래서 슬픈 거구나, 하고 말이다. 죽음도, 슬픔도, 상실도 어쩌면 걷는 법을 배우듯 조금씩 배워가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듯이, 그렇게 조금씩.
동심원을 그리며 자라는 어른
얼마 전 B와 통화를 하다가 아이들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이 너무 자기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것 같다고 투덜거렸더니 B가 덤덤하게 말했다.
“세 살짜리 아이도 엄연한 자아가 있잖소.”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맞다, 아이들도 하나의 인격체다. 다만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삶의 페이지가 많을 뿐이다. 죽음을 아직 모르는 아이가 있고, 타인의 슬픔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으며, 아직 자기와 다르면 틀렸다고 하는 아이가 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이해하는 법을 여전히 배우고 있는 ‘나’라는 인간이 있다.
인간이란 이미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늘 ‘되어가는 존재’라는 걸 자꾸만 잊는다. 동심원을 그리며 바깥으로 세계를 넓혀가는 원처럼,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짐하면서도 순간순간 내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면, 부끄럽다.
매일 조금씩 삶을 배워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말을 건네야 좋을까. 섣불리 재지 않고, 쉽게 단정하지 않으며, 내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다름의 층위’를 다정하게 말할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