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를 읽고
『길 잃기 안내서』라니!!!!
길치인 나에게 이 제목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처음 솔닛을 알게 된 건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에세이였고, ‘비평적 에세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며 충격을 받았다. 그전에 읽었던 에세이 책을 다 버리게 할 만큼, 나는 솔닛의 문장들에 홀딱 반해버렸다. 몇 번의 이사와 해마다 하는 책장 정리 속에서도 솔닛의 책들은 ‘다시 읽고 싶은 책 코너’에 살아 남았다.
우리는 길을 잃는 것을 실패라고 배운다. 정답을 모르고, 계획이 틀어지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 불안해한다. 하지만 솔닛은 오히려 묻는다.
정말 아무것도 잃지 않는 삶이 살아 있는 삶일까.
길을 잃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풍경
“탐험가들은 늘 길을 잃었습니다. 모든 장소가 처음 가보는 장소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그럴 때 쓸 수 있는 수단들에 정통했고, 자신이 어느 경로로 가고 있는지를 상당히 정확하게 인식했습니다. 아마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은 자신이 충분히 생존할 수 있고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낙관적 태도였을 겁니다” 내가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서 그들의 도움으로 이해한 바에 따르면, 길 잃은 상태는 즉 정신적 상태다. 그리고 이 사실은 오지에서 더듬거리는 물리적 길 잃기뿐 아니라 모든 형이상학적이고 은유적인 길 잃기들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길을 잃을 것인가다. 길을 전혀 잃지 않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고, 길 잃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파국으로 이어지는 길이므로, 발견하는 삶은 둘 사이 미지의 땅 어딘가에 있다.
길을 잃는다는 건, 낯선 것 앞에 헤맨다는 것이다. 익숙한 길을 헤매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솔닛이 말하는 ‘길 잃기’는 방향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태도에 가깝다.
책은 길을 잃는 사람에게 필요한 기술도 말해준다. 주의 깊게 바라보는 기술.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길 잃은 상태를 편안하게 견디는 기술. 존 키츠가 말한 것처럼, ‘불확실성과 미스터리와 의문을 견디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우리는 길을 잃어서 힘든 것이 아니라,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해서 더 힘든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빨리 결정해야 하고, 빨리 답을 찾아야 하고, 빨리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살아가는 건 바람 앞의 촛불 같은 것 아닌가. 계획은 어긋나기 마련이고, 날씨는 변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일은 늘 도처에 깔려 있다. 그 모든 변화 속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살아가는 기술일 것이다.

삶은 늘 위험한 법이니, 조금이라도 덜 위험한 삶은 이미 무언가를 상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나는 그러다가 많은 모험을 놓쳤다. 그러나 또한 안다. … 그러나 나는 계속 일직선으로 걸어, 출발점으로부터 계속 멀어졌다. …
내 뒤로 그렇게 길게 발자국이 찍히고 있었으니 문자 그대로 길을 잃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대신 시간의 길을 잃었다.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무언가에 잔뜩 몰두하는 바람에 나머지가 모두 사라지는 방식으로 길을 잃었다.
우리는 길을 잃고 세상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 … 소로는 말한다. 온 세상을 잃으라. 그 속에서 길을 잃으라. 그리하여 네 영혼을 찾으라.
10년 전의 나는 이 문장들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인 것 같다. 셋이었다가 혼자로 살기 시작한 그 해에 나는 멈춰버린 자동차 같았다. 솔닛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스스로 어디 있는지 알기는 해도 사실 길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는 그 시간들. 나는 제대로 길을 잃었다.
그러면 지금은?

더 멀리 나아가려 할 때
우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 과거의 자신과는 다른 자신으로 변하는 일이다. 이 사건이 그렇게까지 극적인 경우는 드물지만, 가까운 것과 먼 것 사이를 가로지르는 여행이라고 할 만한 이런 사건은 모두의 삶에서 늘 벌어진다. 가끔은 오래된 사진 한 장, 오래된 친구 한 명, 오래된 편지 한 통 때문에 내가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들과 함께 살았던 나, 이것을 귀하게 여겼던 나, 그것을 선택했던 나, 저렇게 썼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먼 거리를 건너온 것이다. 어느새 이상한 것이 익숙한 것이 되었고, 익숙한 것은 이상하지는 않더라도 흡사 작아진 옷처럼 어색하거나 불편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유난히 더 멀리 간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알맞은 자아, 혹은 적어도 의문을 제기받지 않는 자아를 생득권처럼 타고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생존을 위해서든 만족을 위해서든 자신을 새로 만들어내려고 하고 그래서 멀리 여행한다. 어떤 사람은 가치와 관습을 상속받은 집처럼 물려받지만, 어떤 사람은 그 집을 불태워야 하고, 자기만의 땅을 찾아야 하고, 맨땅에서부터 새로 지어야 한다. 심리적 변신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문화적 변신일 경우, 이 변화는 훨씬 더 극적이다. 다른 문화에 내던져진 사람은 일생에 한 번 이상 몸이 산산이 해체된 뒤 재편되는 과정을 겪는 나비의 고통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다.
나는 여전히 자주 길을 잃는다. 길치에다가 엄청난 방향치이기에.
전엔 길을 잃는 순간 정신적 혼돈이 더 크게 몰려와 마음부터 무너졌다. 또 길을 잃은 거냐며 자책하고 눈은 뒀다 뭐 하냐고 자신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나를 인정한 뒤로는 자신에게 조금 너그러워졌다. 여전히 낯선 골목에서는 동공지진이 일어나고, 지도 앱을 들고 걸어가도 길을 헤맨다. 그래도 예전처럼 당황하지는 않는다. 이 낯섦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인생도 비슷했다. 돌아보니 나는 생각보다 먼 곳까지 걸어와 있었다. 겁도 많지만 때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도 이상하게 잘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왜 내비게이션을 쓰면서도 헤매냐며 놀림받는 나에게 길을 잃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이라고 말해준 책.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오래도록 책장에 남겨두고, 생각날 때마다 다시 꺼내 읽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