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비언 고닉을 몰아 읽다, 한 작가에게 빠진다는 것
궁금한 작가가 생기면 나는 그 사람의 책을 한꺼번에 사서 몰아 읽는다. 이번에는 비비언 고닉이었다. 작가들의 작가로 유명하다는 것보다 ”에세이와 회고록, 자전적 글쓰기에 관하여”라는 부제에 끌려 어느덧 그녀의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그녀가 쉰이 넘어서 썼다는 엄마와의 관계를 쓴 자전적 소설들과 에세이, 글쓰기 책까지 몽땅.
먼저 손에 닿아 읽기 시작한 책은 글쓰기에 관한 책, 『상황과 이야기』였다.
‘한 작가 몰아 읽기’라는 우연
고닉을 몰아 읽던 중, 우연히 독립출판 서점에서 ‘한 작가 몰아 읽기’ 독서 모임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이번의 작가가 바로 비비언 고닉이었다. 이런 날실과 시실의 우연이라니, 반가운 마음에 냉큼 신청했다.
모임은 한적한 동네의 작은 책방에서 오붓하게 모여 앉아 시작됐다. 서로 인상 깊었던 부분을 나누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물어보며 두 시간이 후루룩 지나갔다. 같은 책을 읽고도 각자가 다르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부분의 다양함이 즐겁다.
맛있는 커피와 모임 후 함께 먹은 김밥이 맛있었던 것은 나만의 플러스 점수. 계속 모임에 참석해 보기로~



글쓰기란, 상황을 이야기로 바꾸는 일
이 책은 고닉이 15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에서 출발했다. 그녀는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읽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글의 표면 아래 숨어 있는 경험과 내적 맥락을 발견하는 것, 즉 “이 글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그녀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건, 책 속의 표현을 옮기자면
처음부터 나는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이란 곧 작가를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 또렷이 보일 때까지 계속 읽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글을 읽을 때 우리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는 더 큰 생각은 무엇일까? 진정한 경험은? 진짜 주제는? 내게 중요한 것은 답을 찾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여느 평범한 독자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작품에 접근하는 것은 어떻게 쓰느냐가 아니라 왜 쓰고 있느냐를 아는 일이었다. 수업을 이어나가면서 나와 학생들은 이 일이 치열한 전쟁과도 같다는 사실을 거듭 발견했다.


나에게 닿은 문장들
로런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가장 깊숙한 내면의 자아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그리고 가장 깊숙한 내면의 자아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아! 그러려면 그 깊숙한 곳으로 뛰어내려야 한다.”
어떤 글이 우리 마음에 와닿는 것은, 글을 읽는 시점에 필요한 우리 자신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얼마나 자명한 원리인가! 사랑이나 정치 혹은 우정에서도 그렇듯,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 우리의 내면은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 얻어야 비로소 풍요로워진다.
삶이라는 원료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 경험을 구체화하고, 사건을 변형하고, 지혜를 전달하는 자아라는 개념에 의해 통제되는 일관된 서사적 산문이다. (…) 중요한 것은 작가가 그 일을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글을 짓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프리쳇은 회고록에 대해 “중요한 건 필력이다. 인생을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칭찬받을 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자아 – 회고록을 통제하는 자아 – 의 개념은 거의 언제나 단 한 조각의 자각을 통해 얻어진다. 이 자각은 서사가 진행될수록 작가 내면에서 서서히 명료해지며 힘을 얻고 규정된다. 좋은 회고록에서는 이 과정이 구성 원리가 되어 글에 형태와 질감을 부여하고, 서사를 전진시키며, 목적의 통일성과 방향성을 제시한다. 모범적인 회고록이 명확히 던지는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하는 것이다. 삶에서 곧장 건져낸 이 이야기의 의미를 결정하는 ‘나’는 정확히 누구인가? 회고록 작가는 이 질문에 마주해야 한다. 답이 아닌 깊이 있는 탐구로써.
내게 던지는 질문
책 속에서 머리를 맑게 해 준 대목이 있다. 고닉이 전남편과 친구와 함께 떠난 래프팅 여행. 일주일 뒤, 같은 강에서 두 사람이 총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세 사람은 각각 그 여행에 관한 글을 썼는데, 남편은 하층민의 삶을, 친구는 불법이민자의 고통을, 고닉은 남편과의 관계 단절을 이야기했다.
같은 사건이지만 완전히 다른 시선, 다른 글이 나왔고 이 경험은 고닉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결국 ‘무엇을 겪었는가’보다 ‘어떤 관점으로 썼는가’에 의해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이 질문을 반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상황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글을 쓰게 된다.
맥북 앞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나는 고닉처럼 스스로에게 묻는다.
“자, 상황은 이렇고…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
상황과 이야기
에세이와 회고록, 자전적 글쓰기에 관하여
지은이 비비언 고닉
펴낸곳 마농지
초판 1쇄 2023년 9월 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