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와 그림책작가로 구성된 시각예술인들의 작업실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작업실에 인사하는 첫 날, 대충 눈인사하고 ‘이것저것합니다.’하고 때우려는 꼼수를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언젠가부터 저를 설명하는게 참 어렵더라구요. ㅡ..ㅡ;;;

예술이라는 커다란 영역안에서 ‘디자인’과 ‘그림’은 교집합이 있지만 확실히 다른 영역이 있어요. 그리고 저는 교집합이 아닌 두 영역에서 참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답니다.
음… 디자인 할때의 저는 마치 공장처럼 돌아가요. 작업내용을 분석하고 정리하고 마감에 맞춰 작업시간을 최단으로 줄이기 위해 광클릭의 마우스를 하는 빠른손+일당백 디자이너 스킬을 발휘하며 일을 뽀드득 씹어 먹는 튼튼한 ‘이’같구요. 그림을 그릴때의 저는 헝크러트려진 안개같은 제 안에 들어온 이미지를 그리려고 입안에 넣고 더듬더듬 한없이 천천히 느리게 음미하는데 이 느린 저의 내면을 탐험하는 것은 마치 알몸의 저를 햟는 ‘혀’같아요. 그래서 이 두 작업 영역의 제 모습이 참 달라요.

단단한 이로써의 저도, 부드러운 혀로써의 저도 다 저라는 사람 안에 있는 모습이지만 이 두 모습의 텐션이 달라서 어쩐지 저를 소개할때면 그냥 웃으며 ‘이것저것합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출판 편집 디자인부터 제품기획과 굿즈 디자인, 일러스트와 디자인 강의, 일러스트레이터, 파인아트를 겸하고 있는(!) 이런것도 저런것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저를 더 설명한다고 하면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게 참 좋은데요, 오늘은 어쩌다 앞에 나열한 모든것을 한꺼번에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웃으시며 “뼈속까지 이쪽 사람이군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름 한 통뼈한다는 제 뼈 엑스레이라도 보았다는 듯이 ‘몇 마디 나눠보면 느껴지잖아요.’라며 덧붙이신 얘기가 참 묘했습니다. 뼈때리는 말을 많이 들었던 요근래 두 영역의 텐션을 왔다갔다하며 울렁거리고 있었는데 ‘커다랗게 보면 결국 시각예술의 우산안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튼튼한 이와 부드러운 혀로 먹고 있는 삶이라는 시간이 때론 쓰고 때론 달고 때론 맹맛이지만, 뭐.. 그건 저 스스로 느껴지는 모습인 것에 비해서 이쪽 밥 오래 먹었다고 제 말투와 태도에서 시각예술인의 아우라가 있나봅니다.;;;; 그래도 궁금한데요… 저기, 정말 제 뼈속이 보이셨어요?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