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저에게 몇가지 변화가 있는 해인데, 그 중 하나가 공간의 변화입니다.
이사 후, 통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등지고 앉아 광합성을 하고, 햇살을 맞으며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고양이와 함께 길어졌다 짧아지는 그림자를 보는 일,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하늘을 보는 일, 창 밖 멀리 산의 실루엣을 만드는 나무들을 눈으로 흟는 일, 바람이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의 구절이 떠올라 사소함으로 궁시렁거리는 문장이 입안에 머뭅니다.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고, 한동안 한 문장도 적지 못했습니다.
분주했던 일상과 정신없는 나날에 동동거리느라 반 보 뒤에서 나를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는 변명을 해보지만 비겁한 변명이라는 것을 알기에 쓴 웃음이 먼저 나오네요.
공중에 나풀거리며 떠돌던 먼지도 어딘가에 내려 앉듯이 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이 공간에 익숙해지며 제 마음도 어딘가의 바닥에 닿는 것 같습니다.
바닥에 닿았으니, 다시 일어서겠지요.
창밖은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는 풍경이 되겠지요.
그러는 동안에 종종 저는 잘 지내고 있노라 편지를 쓰겠지요.
잘 지내십니까? 안부를 묻고 싶은 날입니다.
즐거운 편지
–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