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kscreen on paper, 2020

우리 몸은 ‘늘 여기에 있음’의 경험이다. 움직이는 몸은, 몸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들을 하나의 통일체로, 여러 ‘거기들’을 통로로 삼거나 목적지로 삼는 ‘여기’라는 지속성으로 경험한다. 이러한 논의에 따르면, 움직이는 것은 몸이고 변화하는 것은 세계라는 것, 이것이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그렇다면 여행은 세계의 유동성 속에서 자아의 연속성을 경험함으로써 세계와 자아를 이해하고 양자의 관계를 이해하는 한 방법일 수 있다.

_<걷기의 인문학> 리베카 솔닛 / 반비

[작업 노트] 여기에

너무나 좋아하는 솔닛의 글을 옮겨 적는다. 그녀의 책 <걷기의 인문학>에서 후설의 1931년 논문 ‘살아 있는 현재의 세계와 몸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주변세계(Die Welt der lebendigen Gegenwart und die onstitution der ausserleiblichen Umwelt)’를 설명하며 우리가 우리 몸을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경험으로 걷는 ‘보행’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다.
스케치 없이 그림을 그리며 종이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여행하는 느낌을 가지는 내게 ‘여기에’와 ‘거기에’라는 그림을 설명하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무언가 감정이 묻어난다.
나무를 많이 그리는 나에게 나무는 ‘나’이기도, ‘그’이기도, ‘우리’이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그림의 나무일때는 여기, 그가 있는 곳의 나무일때는 거기- 그곳이 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과 그림을 바라보며 다음을 고민하는 시간이 긴 연필화 작업에 비해
실크스크린 작업은 기획하고 준비해서 시간의 순서대로 공정을 행하는 작업이라 몸을 움직여
찍어내는 즐거움이 큰 판화의 방법을 익혀야 하는 시간이었는데
단 한장만 찍는 모노타입 실크 스크린 작업이라 여러 변수가 많았던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