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잠>, pencil on paper, 2017

[작업 노트] 선을 쌓는 시간

어떤 단어를 품고 있는 시기가 있다.
한때는 ‘침잠’을, 어떤때는 ‘적요’라는 단어와 함께 지냈다.
그런 시기에 그려진 그림들이라 자연스럽게 제목이 되었다.

연필로 세로 선들을 쌓아 형태를 드러내거나 경계를 흐리게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세로 선 하나로는 그 어떤 형태도 될 수 없지만, 긴 시간을 종이 앞에 앉아 겹쳐 쌓이는 선들은 나무가 되기도 하고 풀이 되기도 하면서 흐려지는 경계 때문에 안개에 둘러 싸여있는 그림으로 완성된다.  

지우개를 사용하지 않으며 스케치 없이 바로 선들을 쌓아 그리는 작업에서 나는 종종 알지 못하는 길을 지도나 안내자 없이 여행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천천히 조금씩 흰 종이 위에 안개 숲이 완성되어가는 작업의 시간은 매우 심한 길치인 내가 종이 앞에서 길을 찾아가는 여행의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