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눈이 떠지면 가야지’ 하고 일찍 잤더니, 알림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져 버린 남해에서의 아침.
그렇다면, 다녀와야지. 9년 만이다, 여기.

2.
“외딴 장소에 있습니다. 경로 되짚기 기능으로 지나온 경로를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로 다시 확인”이라니!
워치에 이런 문구가 뜰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9년 만에 다시 일출을 보고 있는 여기는 남해 금산의 정상.
눈앞에 펼쳐진 남해의 바다.
금산 위에 서서 떠오른 시.
편지
이성복
처음 당신을 사랑할 때는 내가 무진무진
깊은 광맥 같은 것이었나 생각해봅니다.
날이 갈수록 당신 사랑이 어려워지고
어느새 나는 남해 금산 높은 곳에 와 있습니다.
낙엽이 지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이야
내게 참 멀리 있습니다.당신을 사랑합니다.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습니다.

3.
살면서 받은 선물 중 가장 입이 귀에 걸리게 즐겁고 고마운 선물은 달달한 오란다, 책 그리고 커피다.
그리고 하나가 ‘그곳에 가보거라’하는 애정 어린 추천이다. 그런데 이토록 즐겁고 고마운 선물보다 더 감격스런 선물은 그곳에 함께 가주는 일이다.
그곳에 나를 데려다주는 일이고
그곳에 함께 오래 서 있어주는 일
그리고 아침을 함께 맞는 일이다.
용윤선 작가는 술, 책, 커피라고 썼지만 나는 술을 안 좋아하므로 (좋아하는 오란다를 보며 고개가 절로 돌아가더라며 놀리면서 오란다를 사주던 B가 떠올라) 오란다로 바꿔 적어 본다. 나는 어떤 선물에 가장 마음 뭉클하게 감동 받는가 생각하면서.
B로부터 남해의 맛집과 멋진 풍경을 건네 받고서 짬이 나면 나도 달려가리라 벼르고 벼르던 2026년, 10월이 되어서야 남해를 다녀왔다.

4.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도, 내 눈이 찍은 순간들이 있다.
윤슬이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와 9년 전, 남해에 다녀와 보라며 추천해 준 이곳에서 내 눈앞에 나타난 B.
이 우연한 풍경이 꿈같아서 자꾸만 웃음이 난다.
남해에서의 1박 2일 동안 나는 입이 귀에 걸리게 행복하고 고마운 선물들을 듬뿍 받았다.
냉장고에 있는 달달한 수제 캐러멜, 읽을 책이 가득하지만 또 선물받은 책들, 그리고 사진에 담기지 않는 멋진 풍경들.
그리고 내가 좋아할 거라며 하나하나 알려 준 애정 가득한 곳들.
이토록 즐겁고 고마운 선물보다 더 감격스러운 선물은 그 풍경 속에 있던 B였다.
예민하다고 궁시렁거리면서도 내게 듬뿍 퍼 주는 배려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지.
내 눈꺼풀 안에 그가 있던, 함께 본 풍경이 담겨 있다.
288km를 달려 다시 집에 도착해 일기를 쓴다.
눈꺼풀 안에 담겨 있구나. 내 눈이 찍은 순간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