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멈춰버린 리듬
부상을 당한 이후로는 좀처럼 과하게 운동하지 못하게 되었다.
2~3개월 동안은 조금만 무리를 해도 어김없이 손목에 통증이 올라왔다. 일주일에 4일씩 가던 킥복싱은 자연스럽게 2일로 줄었고, 이번 학기가 시작되며 외부 강의 일정이 늘어나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가기도 빠듯하다.
막상 운동을 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데, 바빠진 일정과 길어진 이동 동선, 수업을 마치고 나면 녹초가 된 몸이 저녁이면 방전된 채 쓰러지기 일쑤였다.
다시 들어가는 체육관
그래도 시간을 내어 체육관 문을 열고 인사를 하면, 관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몸 푸시고, 제가 미트 잡아 드릴게요.”
오랜만에 왔으니 더 빡세게 운동하셔야죠! 하며 더 혹독하게 훈련시켜주시는 자애로운(!) 관장님.
다른 분들과 3라운드를 뛰면 버틸 만한데, 관장님이 미트를 잡아주시면 이야기가 다르다. 목에서 쇳소리 같은 숨이 올라오고, 입안이 바짝 말라 쇠맛이 난다. 헉헉거리며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호흡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숨을 ‘내는’ 게 아니라 ‘자르는’ 것
펀치를 날리거나 킥을 찰 때 ‘칫-’ 하고 소리를 내라고 배웠지만, 민망함에 나는 늘 ‘훗-’ 하고 작게 흘려보내는 정도였다. 그렇게 동작마다 소리를 내면서도, 긴장하면 숨을 참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래서 이날은 마음먹고 부탁했다.
“딱 2라운드만, 호흡에 집중해서 해보고 싶어요.”
관장님은 ‘치’하며 내는 소리는 입으로만 ‘내는’ 것이 아니라, 숨을 ‘잘라내는’ 것에 가깝다고 설명해주셨다.
정확히는 ‘츠’와 ‘치’ 사이의 소리. 납작한 빨대에 바람을 불듯 짧고 힘있게, 그리고 동시에 배에 힘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먹을 내뻗는 찰나에 숨을 짧고 강하게 끊어주면, 그것이 곧 복압을 높여 몸을 단단하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그 순간의 호흡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짧게 내뱉는 숨과 함께 코어가 단단히 조여지며 힘이 실리고, 동시에 방어가 되고, 리듬이 만들어진다. 이 힘이 하체와 몸통의 회전력을 주먹 끝까지 전달하게 해 준다. 즉, 더 강력한 펀치를 던지기 위한 장치인 셈.
결국, 잘 치기 위해서는 더 세게가 아니라 더 정확하게, 더 가볍게, 그리고 힘을 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힘이 들어가는 순간 vs 힘을 빼는 경지
몇 번을 해봐도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계속 해보겠다고 인사하고 나왔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도 나도 모르게 ‘츳’, ‘칫’, ‘치’ 하고 짧게 숨을 내뱉어본다. 배가 단단해지는지 손을 대어 확인도 해본다.
저녁 시간에 운동을 가면 새로 오신 분들이 많다. 샌드백을 치다가 내가 옆에 서면, 괜히 더 힘을 주며 동작이 커지는 게 보인다. 피식 웃음이 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내 호흡에 집중한다. ‘츳’ 하고 숨을 끊으며 펀치와 킥을 돌려찬다.
한참을 치고 나면, 옆에 있던 분이 슬쩍 다가와 말을 건넨다.
“와… 오래되셨나 봐요.”
부상 이후로 ‘힘을 빼고 친다’는 게 어떤 건지, 아주 조금은 감이 오는 듯하다.
이제는 막 시작한 분들의 펀치를 보면 ‘아, 저게 관장님이 내게 말하던 냥냥펀치구나’ 하고 알아차릴 정도는 되었다.
요즘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게 B는 자주 말한다. “힘 빼고, 편하게 쓱쓱. 그렇게 꾸준히 해야 돼. 킥복싱할 때도 그렇잖아.”
나도 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입이 삐죽 나온다. ‘나도 힘 빼고 하고 싶다고욧!’ 속으로 외치며. 말처럼 쉬우면 누군들 못하겠는가.
결국 힘 빼기라는 기술은, 온몸에 힘을 꽉 줘본 서툰 시절을 지나 힘을 쓰는 법을 처절하게 익힌 뒤에야 비로소 허락되는 ‘고수의 기술’일 것이다. 그러니 아직은 나에게도 그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게 당연하다.
이렇게 놓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힘을 빼고도 정확하게 필요한 만큼만 딱 치고 빠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먹잇감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정확히 한 번에 물어버리는 암사자처럼.
그러니 오늘도 간다, 킥복싱하러.
➜ 7. 예체능의 자세; 힘 빼기의 기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