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업 노트] 안개 숲, 길을 잃은 것 같은 불안한 공간
연필로 세로 선들을 쌓아 형태를 드러내거나 경계를 흐리게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세로 선 하나로는 그 어떤 형태도 될 수 없지만, 긴 시간을 종이 앞에 앉아 겹쳐 쌓이는 선들은 나무가 되기도 하고 풀이 되기도 하면서 흐려지는 경계 때문에 안개에 둘러 싸여있는 그림으로 완성된다.
짙은 안개 속에선 시야의 형태들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알 수 없다는 두려움에 거리감이나 방향을 잃게 되거나 확신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쉽게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안개에 쌓인 길에서,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인지 확신 할 수 없다고 멈춰있을 수는 없다. 느리더라도 이 길이 맞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조금씩 앞으로 발걸음을 뗀다. 보이지 않고 확신 할 수 없는 저 앞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겠다는 마음,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안으면서도 이 안개를 뚫고 지나가겠다는 마음. 이 상반된 여러 감정이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지우개를 사용하지 않으며 스케치 없이 바로 선들을 쌓아 그리는 작업에서 나는 종종 알지 못하는 길을 지도나 안내자 없이 여행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천천히 조금씩 흰 종이 위에 안개 숲이 완성되어가는 작업의 시간은 매우 심한 길치인 내가 종이 앞에서 길을 찾아가는 여행의 여정이다.